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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자급자족서 경제민주화까지'…게임에 경제사 있었네

입력 : 2016.10.17 08:06|수정 : 2016.10.17 08:06


▲ 리니지 게임 장면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게임은 '삶의 축소판'이라는 명칭답게 여기에는 '생계 활동'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칼·갑옷·약물 등 재화를 모으고 골드를 주고받는다.

실제 주머니 사정과는 무관한 가상 경제이지만 다들 진지하다.

아이템과 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게임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 속 경제판이 나름의 발달사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시 수렵경제에서 출발해 공정과 분배를 고민하는 새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는 등 실물경제 역사와 양상이 비슷하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가천대 권용만 교수(게임학)는 이런 내용의 '온라인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의 발전에 관한 연구' 논문을 올해 한국컴퓨터게임학회논문지에 발표했다.

논문은 미국의 '울티마 온라인'이나 한국의 '바람의 나라' 같은 초기 온라인 RPG(역할수행게임)는 원시시대의 채집경제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게임 캐릭터가 자연에서 사냥 등 활동을 통해 생산물을 모으는 '자급자족' 사회였고, 운영자가 이런 활동에 참견하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1990년대 말 국내 온라인 RPG 붐을 본격화한 리니지부터는 점차 잉여 아이템에 따른 부의 축적이 문제가 됐다.

일부 부유한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싸게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팔았고, 사냥터를 독차지하거나 게임의 필수 아이템까지 좌지우지하는 횡포를 부리는 '자본가'가 나타났다.

리니지2(2003년작)로 넘어가서는 이런 부조리 때문에 다수의 사용자가 부유한 혈맹(플레이어 집단)을 공격하는 '바츠 해방전쟁'까지 일어났다.

게임 속 사냥터 통제와 무거운 세금에 반발한 일종의 '사이버 민란'이었던 셈이다.

게임 개발사도 점차 이런 문제가 재미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개입에 나섰다.

'수정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수시로 바꿔 '대박' 독식을 막고 특정 아이템의 가격이 폭등하면 운영자가 게임 내의 물품 수량을 조절해 가격 균형을 맞추는 조처가 대표적 예다.

권 교수는 수정 자본주의 체제의 대표작으로 미국 블리자드사의 2004년작 온라인 RPG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꼽았다.

WOW는 플레이어의 화폐 보유량과 상관없이 같은 퀘스트(모험)를 주고 이를 완료하면 동일한 보상을 제공해 부의 지나친 쏠림을 막았다.

또 사냥터 독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개인별 던전(미로)을 마련해 여러 플레이어가 하나의 던전을 두고 분쟁하던 상황도 탈피했다.

이런 간섭이 틀에 박힌 플레이를 강요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이후 게임 업계에서는 '신자유주의' 사조가 나타났다.

누구나 아이템·땅 등을 무제한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게임의 역동성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요즘은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려는 '경제민주화' 시도가 한창이다.

논문은 아이템 과잉 경쟁을 막는 '활력 시스템'을 선보인 이카루스(2014년작)와 '1가구 1주택' 원칙으로 게임 내 부동산 과열을 막은 메이플스토리2(2015년작)등이 경제민주화 실험 사례로 분류된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논문에서 "게임의 제반 경제 시스템을 실물경제 측면에서 분석하는 연구가 쌓이면 새 게임에 어떤 경제 제도를 도입할지를 검토할 때 좋은 참고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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