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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부는 왜 통신요금 내리는 걸 싫어할까

김범주 기자

입력 : 2016.10.07 14:11|수정 : 2016.10.07 14:11


단통법이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시작부터 걱정했던 대로, 단통법 이후 통신사 곳간엔 돈이 더 수북히 쌓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정부가 내세웠던 통신비 인하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목요일, 국회에서 음미해 볼만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살 때, 통신사에서 주는 지원금 대신 요금을 20% 할인해서 살 수 있는데, 이걸 30%로 확대해서 요금을 더 내려보자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서 단통법 최고 책임자인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원금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며 사실상 거부했습니다.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기본적으로 요금할인을 지원금에 상응해서 하기 때문에, 지원금의 평균을 내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요금할인을 플러스마이너스 5%를 하는 것을 더 넓히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지금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20% 요금할인이 이용자에게 더 이익이라고 해서 그쪽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발의하신대로 하면 너무 쏠림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해석을 하자면 현재 단통법 상 스마트폰에 최대로 줄 수 있는 금액은 최고 35만 원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요금할인 20%는 그 지원금 평균과 맞춰 놓은 건데, 요금을 30% 깎아줄 경우에는 통신사가 내주는 지원금을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단통법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을거란 이야깁니다.

이 보도가 나간 이후, 방통위원장이 왜 사람들이 요금을 더 할인받는 방안에 대해 '우려'하느냐는 논란이 인터넷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 지원금 35만 원의 근거는 뭔가

최 위원장이 통신요금 할인의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는 지원금이 왜 꼭 35만 원이어야 하냐는 겁니다. 사실 단통법을 처음 만들 때 지원금을 최고 35만 원으로 정한 건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었습니다. 연구를 따로 맡기거나 분석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합리적으로 정하지도 않은 금액은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정작 단통법의 목표였던 통신요금 인하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통신비 전혀 줄지 않았다

통신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수치는 ARPU라는 겁니다. 가입자 1명이 통신사에 평균 얼마나 돈을 내고 있나 보는 겁니다. 통신사들은 매 분기마다 투자자들에게 이 금액을 발표합니다.청구 ARPU TrendSKT의 ARPU를 보면 단통법 이후 꾸준히 3만 6천 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통신사들도 비슷한 수준이고요. 단통법으로 지원금은 아끼고, 통신요금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단통법으로 1년에 1조 원 정도 마케팅비를 절약한 걸로 분석이 됩니다. 법 취지대로라면 이 1조 원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줄 고민을 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 20% 요금할인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사실 통신사들은 30%는커녕, 지금 있는 20% 요금할인 제도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단통법 진행상황을 뒤져보고는 따끔하게 꾸짖기까지 했습니다.

예를 들어 5만 원 요금제를 20% 요금할인을 받아서 2년간 쓰고 있다고 해보죠. 그러면 한 달에 실제로는 4만원을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2년 약정이 끝나고 그냥 전화기를 계속 쓰면 요금은 5만 원으로 올라갑니다. 1년간 더 전화기를 쓰겠다고 재약정을 해야만 20% 요금할인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소비자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조사를 해보니, 2년 약정이 끝난 사용자가 모두 1천 255만 명인데, 그중에 14%인 177만 명만 재약정을 했을 뿐, 무려 1천78만 명은 요금할인이 없이, 바가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 1천78만 명 중에 절반은 약정이 끝나고도 1년 넘게 이 통신사를 이용해 왔습니다. 통신사들 입장에선 진짜 '우수고객'들인 셈이죠.지원금 상응 할인 요금제 가입 현황감사원이 알아 보니, 통신사들은 이 가입자들 대다수에게 "재약정을 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문자를 보낸 경우에도 '선택약정할인' 등등 일반 소비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을 적어 넣어 재약정을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통신사 입장에서야 손해볼 일, 굳이 성실하게 알려주기 싫었겠죠.

1천만 명이면 국민 5분의 1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잡니다. 1인당 5천 원만 쳐도 통신사가 한 달에 5백억 원, 1년이면 6천억 원을 꿀꺽 했다는 이야깁니다. 전국민 속이기라고 불러도 무방한 상황이죠. 그런데 이 1천만 명이 20%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못 받고 통신요금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독관청인 미래부나 방통위는 몰랐을까요. 알았다면 한통 속이고, 몰랐다면 직무유기입니다. 어느쪽이든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20% 요금할인도 이렇게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서 손해를 끼쳤으면서, 30% 요금할인은 또 거부합니다.

● 지금이라도 제대로 고쳐라

단통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통신요금은 줄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판매는 줄었습니다. 유통매장들은 문을 닫았고, 스마트폰 회사들도 공장을 덜 돌리게 됐습니다. 그만큼 경제는 위축됐고, 정부가 거기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도 줄었습니다. 현재의 단통법으로 이득을 보는건 통신사 뿐입니다.

국회가 만든 법, 국회에서 푸는게 맞습니다. 다양한 안들이 국회에 올라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합의안을 내서 새로운 법을 만드는게 필요합니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합니다.

단통법은 시작부터 3년 한시법이었습니다. 내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1년을 더 기다릴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국민들 부담만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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