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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손승욱 기자

입력 : 2016.10.03 14:56|수정 : 2016.10.03 14:56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조직적 보험사기꾼들' 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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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적발되는 보험사기 액수가 6천 5백억 원을 넘었습니다. 모르고 지나간 범죄까지 따지면 보험사기 액수는 4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게 보험사의 계산입니다.

 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종신보험의 입원 특약을 이용한 이른바 '나이롱 환자'들이 보험 사기의 주범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보험사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가 올라간다는 게, 역시 꾸준히 보험료 올리고 있는 보험사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보험사기꾼만을 잡기 위해 등장한 특별법인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지난달 30일 발효됐습니다. 보험업계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법안인데, 과연 보험사기를 얼마나,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 10년 이하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기존보다 3천만 원 더?

 보험사기는 지금까지 형법에 있는 사기죄로 처벌해왔습니다. 형법 347조에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사기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반사기꾼들을 처벌하는 법인데, 보험사기도 그 법으로 처벌을 해왔던 겁니다. 이 사기죄의 형량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이번 특별법에서는 일반 사기보다 범위를 더 좁혀 '보험자를 속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라고 간단하게 보험사기를 규정한 뒤 보험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보험사기꾼만을 위한 '맞춤 법안'인 셈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형량이 기존 형법에 있는 2천만원이 이번 특별법에서 5천만원으로 늘어난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10년 이하의 징역은 형법이나 이번 특별법이나 똑같고 벌금만 3천만원 늘어난 겁니다.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언론이나 보험사들이 '10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 벌금'이라고 하도 강조하니까 처벌이 무척 강해진 것 같지만, 원래 사기죄도 10년 형을 받을 정도까지 처벌해왔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법안을 만들면서 보험사기꾼에 대한 형량을 대폭 올리지 못한 점이 이 특별법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괜히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보험사기꾼들에게 엄포라도 놓고 있는 걸까요?

 ● 조직적 보험사기는 '징역형'…허위진단서를 잡아라

 한 보험사의 보험사기조사단 조사관은 "5억원 이상 보험사기범에 대해 딱 징역형형량을 정해놓은 것이 맘에 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특별법에는 보험사기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에는 무기 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고, 5억원에서 50억원 사이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이 가능합니다.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물론 기존에도 가중 처벌이 가능했지만 보험사기 이득액 기준으로 5억원 이상을 가중처벌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실적으로 개인이 5억원 넘는 보험사기를 벌이긴 쉽지 않습니다. 최근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보험사기 전문가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도 1인당 3~4억원이 최대입니다. 실제 사건 하나,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통원급여금 특약이란 게 있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일정액씩 주는 특약입니다. 대전에 사는 한 보험가입자는 하루에 최고 7번 병원에 가는 방식으로 4년간 3억여원의 보험금을 타는 보험사기를 저질렀습니다. 주로 "무릎이 아프다"고 했고, "발목이 아프다" "발가락이 아프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헬스클럽에서 자전거를 아주 빠른 속도로 탈 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범죄일람표를 일일이 다 살펴보기 힘들 정도로 상습적이고, 하루에 보통 5~6번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는 강행군(?)을 했지만 보험사기 금액은 가중처벌의 기준인 5억원에는 못미칩니다.

 그렇다면 '5억원 이상 가중처벌'이라는 조항은 누굴 겨냥한 걸까요? 바로 조직적인 보험사기 집단을 노린 겁니다. 요즘들어 보험사기가 큰 돈이 되면서 전직 보험회사 직원부터 보험설계사, 병원 사무장, 그리고 의료진까지도 포함된 보험사기단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조사단원들은 이런 '보험사기의 고리'를 통째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허위진단서를 첨부해서 오면 보험사기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찍소리 못하고 그냥 보험금을 줘야 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이번 특별법의 5억원 이상 가중처벌 조항은 바로 이런 보험사기꾼들에겐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현행법은 보험사기로 제3자가 부당하게 번 돈까지 합쳐서 부당이익액수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허위진단서 100장을 내준 의료진의 경우 그 100명의 환자들이 타간 보험금을 모두 다 더해서 보험사기죄로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큰 돈 쉽게 벌 수 있다"며 '눈 한 번 딱 감고' 보험사기에 가담해온 일부 의료진에겐 잃을 것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50억원이 넘어가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니까요. 이런 짜고 치는 '허위진단서'만 사라진다면 보험사기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험사기조사단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벌금형은 "이제 그만"…검찰?법원의 엄벌 의지 '자극'

 보험사기 재판의 선고유형을 살펴보면, 실형은 22.6%에 불과했습니다. 벌금형이 전체의 51.5%로 절반을 넘었고, 집행유예가 26.3%였습니다. 쉽게 말해 감옥에 가는 사람은 다섯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라는 겁니다.벌금 5천만 원이 어떻게 보험사기 막을까  황보윤 변호사는 "보험사기가 일반 사기에 비해서 형량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면서 이번 특별법이 이런 관행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는 "검찰, 법원이 관대했던 관행에서 좀 더 엄벌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보험사기 액수에 따라 '징역 3년 이상', '무기 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이라고 정해놓은 것도 중요하지만, 특별법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 사기꾼과는 또 다른 중대성이 있기 때문에 법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보험사기꾼을 잡는 검찰이나 감옥에 집어넣는 법원도 공소장과 판결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될 거란 기대도 있습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 1조에는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그 밖의 이해관계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험업의 건전한 육성과 국민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을 위해 이 법이 나왔다는 겁니다.
 보험사들은 국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이 법안을 원했습니다. 이 법은 분명히 국민 복리 뿐 아니라 보험사 수익에도 보탬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으로 보험사기가 줄어들면 보험사는 쓸데없이 지급되는 보험금을 크게 줄일 수 있고, 국민들은 그만큼 보험료가 덜 오르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보험료도 덜 올라야겠습니다. 금융당국의 보험료 자율화 이후 올 들어 종신보험, 실손보험, 자동차 보험의 보험료가 크게 올랐습니다. 실손보험료는 18%나 올랐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이제 보험업계가 그토록 원하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시작됐으니 앞으로 보험료 좀 덜 올리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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