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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경제] 첫 단추부터 꼬인 한진해운 처리…앞으로가 더 문제

차병준 기자

입력 : 2016.09.12 17:59|수정 : 2016.09.12 17:59


국내에서 부실 해운사 하나를 법정관리로 넘긴 일이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번졌습니다. 해운사 대주주의 무책임한 버티기와 정부의 안이한 정책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첫 단추부터 이렇게 꼬여버리면서 경제 현안인 남은 구조조정 작업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우려가 큽니다. 미리 대비했더라면 충분히 피해서 갈 수 있었던 경제 암초를 굳이 들이받고 위기를 키운 한진해운 사태의 과정과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Q. 먼저 이번 한진해운 사태의 원인부터 따져볼까요. 무엇보다 법정관리의 파장에 대비를 못한 탓이 큰 거죠?
A. 그렇습니다. 준비 없는 법정관리의 결과가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나타난 겁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파장인데 제대로 대비를 못한 배경, 두 가지로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주주인 한진그룹과 채권단 사이의 힘겨루기가 막판까지 진행된 탓입니다.  채권단은 7천억 원 수준의 자구안을 요구했지만 한진그룹은 그에 못 미치는 자구안을 내고 버텼습니다. 국내 1위의 해운사를 설마 버리겠느냐는 기대 섞인 배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도 한진해운을 살리는 쪽에 무게중심을 뒀던 것으로 보입니다. 채권단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날 아침에 한진해운 주가가 18% 넘게 올랐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거겠죠. 어쨌든 마지막 날까지도 채권단과 한진그룹 간의 힘겨루기만 있었지, 플랜B라고 할 수 있는 법정관리라는 상황에는 대비를 못했던 겁니다.

두 번째는 쉽게 말하면 몰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어떤 파장이 벌어지고 그러니까 어떤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거죠. 정부가 과거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의 법정관리 경험을 가지고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STX팬오션은 컨테이너선 규모가 5%밖에 안 됐고 대한해운은 벌크선 사업만 했기 때문에 컨테이너선 사업이 95%인 한진해운과는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걸 인식하지 못 했다는 얘기입니다.

한진해운 정도 규모의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기는 상황이라면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주요 상대국 법원에 스테이오더, 선박압류 금지 신청을 곧바로 제기하도록 준비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그래서 각 나라의 항만에서 선박 압류와 입항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이건 결국 해운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구조조정 결정이 채권단과 금융위, 이렇게 금융 쪽 의사결정 중심으로 이뤄진 과정도 배경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Q. 해운업계에서 파장에 대한 경고를 미리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부나 채권단은 그냥 무시를 해버린 거죠?
 A.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운임 폭등, 화물 감소 등으로 연 17조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부산지역 해운 항만업계만 2300개의 일자리가 줄 것이라는 경고를 선주협회에서 내놨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채권단은 과장됐다며 일축했죠. 아마 선주협회니까 대주주인 한진그룹 편을 들어주기 위해 과장한 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넘기는 결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해상 물동량 문제와 해운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금융·해운 산업 측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 이렇게 밝혔었습니다. 그간의 과정에서 이미 공언(空言)으로 확인이 된 말이죠.

나중엔 "한진해운 측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대비에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정부가 해명을 하고 나섰는데 정책당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오히려 실망감만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대주주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진해운에 대해 법정관리 자체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파장을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건 어쨌든 정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Q. 물류대란이 벌어진 이후의 정부 대응도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요. 어떤 부분인 거죠?
A. 법정관리 직후부터 외국 항만에서 압류되거나 입항마저 거부당해 바다를 떠도는 선박들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습니다. 물건을 보내지도 받지도 못하면서 수출업체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글로벌 물류대란이 벌어진 거고, 우리 경제의 신인도까지 함께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볼까요.

해양수산부에서 운영하는 비상대응반이 '관계부처 합동 대책 TF로 확대 개편된 게 이달 4일입니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부하며 사실상 법정관리로 넘긴 지 엿새째가 돼서야 사실상 종합 대책본부가 구성된 겁니다. 가장 시급한 게 압류되거나 바다를 떠돌고 있는 화물의 처리 문제, 즉 한진해운 소속 선박의 묶인 발을 풀어줘야 하는 거였는데 현실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선박압류금지 신청을 하고 선박압류 위험이 적은 곳을 거점 항만으로 지정해 공해상의 선박을 유도한다는 정도였습니다. 무엇하나 해결되는 상황이 없었습니다.

Q. 결국은 한진해운이 밀린 각종 대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인 해법이 없던 거죠?
A. 그렇죠. 그런데 이 부분도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한진해운의 체납금액이 생각보다 워낙 많았던 겁니다. 용선료, 하역·운반비, 장비임차료 등을 포함해서 6천억 원이 넘는 대금이 밀려있었습니다. 회사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니까 이 밀린 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해외 항만 당국에서 선박을 압류한 거죠. 일단 하역을 위해서라도 2천억 원 정도의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은 사실상 여력이 없습니다.

돈 달라고 손 내밀 곳은 채권단과 대주주인 한진그룹 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채권단은 대주주의 책임을 물었고 한진측은 여력이 없다고 발을 뺐습니다. 법정관리 결정 이전에 보였던 핑퐁게임을 다시 반복한 겁니다. 

결국 여론의 압박을 못 견디고 한진 측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재를 포함해 천억 원을 마련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법정관리로 넘어가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돈을 지원하면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3차례의 이사회 끝에 한진해운의 터미널 지분을 먼저 담보로 취득한 뒤 600억 원을 대여하기로 했는데, 이미 이 터미널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해외금융회사 등의 동의를 받아야 해서 실제 지원이 이뤄질 지는 불투명합니다. 

결국 당장은 조양호 회장의 사재 4백억 원이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자금인데, 이 정도로는 마른 땅에 물 뿌리기에 불과해 사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나머지 체납대금도 여전히 복병으로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법원까지 나서서 채권단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자금지원을 끊겠다며 법정관리로 넘겨놓고 채권단도 다시 돈을 빌려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Q. 선박들의 묶인 발을 푸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 화물 표류 사태를 해결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A. 앞으로 수출입물량의 처리 문제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당장 미국 최대의 쇼핑성수기인 블랙프라이데이와 성탄절이 다가오죠.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에는 선적을 해야 하는데 수출업체들은 껑충 뛰어오른 운임과 대체선박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당초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 선사들에 수송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었는데 해운동맹에서 한진해운의 화물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방법이 없어졌죠. 현대상선 선박을 대체 투입하는 방안도 물량 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상 물류에 차질이 계속되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죠. 정부가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지만 뾰죽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Q. 이번 물류대란에 따른 소송 문제도 또 다른 후폭풍을 불러올 거 같아요.
A. 우선 앞서 말씀드린 체납 대금에 대한 청구소송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선박이 압류되거나 입항하지 못하면서 한진해운이 약속된 날짜에 화물을 운송하지 못한 데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입니다. 소송 규모가 최대 140억달러, 15조6천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미 영국 해운사인 조디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 307억 달러의 용선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 사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고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도 우려가 됩니다.

Q. 결국 한진해운의 회생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쉽지 않아 보이네요.그러면 이번 해운업 1차 구조조정은 현대상선 하나만 살아남는 결과로 갈 가능성이 높은거죠.
A. 그렇습니다. 법정관리의 결과가 꼭 청산만은 아닐 수 있지만 한진해운 경우에는 잃어버린 게 너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해운동맹 네트워크를 잃었고 신뢰도도 추락했습니다. 소송 사태의 결과도 어떤 악재가 될지 모르죠. 채권단이 지원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운영자금 마련도 어렵습니다. 결국 한진해운은 청산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고 그렇게 되면 결국 대형 국적 해운사로는 현대상선 하나만 남게 되는데 현대상선도 앞날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약 4천억 원의 영업 적자를 내면서 보유 자금이 7천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현대증권 매각 등으로 1조2천억 원을 확보한 덕분에 법정관리를 피할 수 있었는데 영업 손실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내년 상반기에는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겁니다. 그때 가면 다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추가 자금지원 논란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해운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구조조정은 이제 겨우 시작인 셈입니다.
 

Q. 해운업 구조조정, 참 답이 없는 거 같습니다. 어쨌든 한진해운 사태는 구조조정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인데 앞으로 예정된 조선업 구조조정도 걱정이 많이 되네요.
A. 조선업 구조조정은 사실 더 큰 난제입니다. 조선사들은 해운사보다 부채 규모가 크고 일하는 근로자 수가 많은데다가 협력업체들에 미치는 산업 연관효과도 커서 구조조정의 과정이 더 험난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업 경기 침체는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대우조선해양만 하더라도 올해 선박수주 62억 달러를 예상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달까지 실제 수주 실적은 10억 달러가 채 안됩니다. 수주 절벽이라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부실과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 참 쉽지 않죠. 해운·조선업 뿐 아니라 철강과 화학, 그리고 다른 취약업종까지 정부가 구조조정을 미리 예고해 놓은 산업 분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남은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이번 한진해운 법정관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정책대응 능력 때문입니다.


※차茶경제: 차(茶) 한잔의 여유.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듯 차병준 SBS 논설위원의 친절하고 품격있는 경제 해설을 만나 보세요.   

* 기획 : 차병준 / 구성 : 윤영현 / 그래픽 :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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