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던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사태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한 모습이다.
직접 자금지원에 나서기로 했던 한진그룹 내부에서는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고, 법원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정부와 채권단은 거부하기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8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그룹 측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지원 안건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9일 속개하기로 했다.
앞서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사재 400억원에 더해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자회사 TTI가 운영하는 해외 터미널 지분과 채권 등을 담보로 600억원을 대여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일부 반대 의견과 함께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채권자와의 차별 문제와 배임 소지에 대한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룹 측은 9일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만일 반대 의견이 더 힘을 받는다면 지원안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채권단도 추가 지원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전날 서울중앙지법 파산 6부로부터 받은 한진해운에 대한 대출 제공 요청 공문을 검토한 끝에 지원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리고 이를 법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한진그룹이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행 시기가 불투명한 데다 한진해운을 정상화하는 데는 부족하다며 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재판부는 산은에서 추가 대출을 해 주면 회생 절차 중에 우선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으나 정부와 채권단은 지원 금액을 온전히 돌려받을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비정상 운항 중인 한진해운 선박에는 약 140억달러(약 15조원)의 화물이 적재된 것으로 추산된다.
재판부는 이를 기간 내에 운송하지 못하면 화물 가액 상당의 손해는 물론 우리 기업의 현지공장 가동중단 등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단 공해상을 떠도는 컨테이너선의 하역만이라도 해놓아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1천7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와 채권단이 지원 거부 방침을 정한 이상 한진그룹이 9일 이사회에서 해운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자금조차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이럴 경우 재판부가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물류대란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금융당국과 한진 측은 책임 소지를 두고 진실공방마저 벌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 "관계부처가 (물류대란 관련) 대책을 논의했지만 한진 측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대책 마련에 가장 필요한 게 한진 측이 가진 화주 정보, 운송 계획 등이고 한진에 여러 차례 대비책을 세워달라고 얘기했다"면서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측은 "해양수산부와 채권단의 정보 요청에는 대부분 다 협조했다"며 "물류대란을 막기 위한 운송정보 등에 대한 자료 요청은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