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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생각에 벌써 스트레스 폭발"…명절이 두려운 주부들

이정국 기자

입력 : 2016.09.02 07:36|수정 : 2016.09.02 07:36


"남들 다 즐겁다는 명절이 며느리들에게는 왜 고통과 스트레스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족 최대 명절'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부가 늘고 있습니다.

남편 역시 아내 눈치를 살피느라 선물 공세를 펴는 등 묘안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가족 간 갈등으로 이어져 명절 연휴 가정폭력 신고가 평소 1.5배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부산 모 구청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 A씨는 이번 추석 당일 당직 근무를 자청했습니다.

시댁에 가서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눈치를 보는 처지를 탈피해 보자는 생각에섭니다.

그런데 본인과 마찬가지로 추석 연휴 당직 근무를 신청한 여직원이 5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그는 "명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면 추석 연휴 근무를 서로 하려고 하겠느냐"고 씁쓸해했습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B(56·여)씨는 벌써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맏며느리인 그는 자녀가 장성하고 동서 3명이 있지만, 음식 장만을 도맡아야 할 형편입니다.

"요즘 시장가면 음식 다 팔아요"라는 동서들 말에 충격을 받아 "혼자 음식을 하겠다"며 언성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상을 모시는 집안 행사마저 '쉽게 쉽게 하자'는 풍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서울에 사는 시동생 내외가 '추석 연휴에 근무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려오지 않는 일이 몇 년 사이 잦아진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는 "올해는 시동생 내외가 어떤 핑계를 댈지 생각하면 벌써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회사원 C(40·여)씨 역시 추석 연휴가 전혀 달갑지 않습니다.

서울에 있는 시부모가 몸이 불편해 남편과 둘이 제사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친정 방문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는 "좁은 주방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식후마다 과일과 차를 차릴 생각에 벌써 걱정이다"며 "차라리 명절 근무를 희망하고 싶다"고 푸념했습니다.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는 명절 관련 글들이 잇따라 올라옵니다.

두 아이 엄마라는 D씨는 "결혼하고 친정 부모님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겨 드리고 가족여행 한번 가지 못했지만 시댁 제사, 어버이날, 김장 행사는 열심히 따라 다녔다"며 "그런데도 돌아오는 건 남편의 뻔뻔함과 시어머니의 막말뿐"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이번 추석 연휴 친정에 가는 문제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분노가 폭발해 결국 싸웠다고 전했습니다.

남편이 받는 명절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기 수원에 사는 E(45)씨는 추석 연휴 전날인 13일 충북 충주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인근 처가에 들러 18일 돌아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가위 내내 본가와 처가에서 머무르는 게 다른 사람 눈에 화목해 보이겠지만 아내와 치를 '명절 전쟁'에 걱정이 많습니다.

귀경길부터 시작하는 아내 잔소리가 벌써 들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본가에서 홀시아버지를 챙기느라, 처가에서 딸 노릇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와 다투기를 16년째 반복하고 있다"며 "명절이 끝난 뒤 한동안 등을 돌리고 자는 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아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청소와 빨래 등 며칠간 집안일 돕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구 모 대학 교수인 F(46)씨는 용돈을 아껴 모은 돈으로 최근 아내에게 수십만원짜리 고급 스파 이용권을 선물했습니다.

명절 전 선물 공세는 10여년 간 이어진 일입니다.

선물 종류도 명품 가방, 현금, 고급 화장품 등 다양합니다.

4남매의 장남인 그는 명절이 달갑지 않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시댁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시댁 식구와 관계가 원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명절에 가족이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아내 마음을 풀어놓으려고 선물을 준비한다"며 "그런데도 부모님 눈치 보랴 아내 눈치 보랴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지난 2월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명절 기간 가정폭력 신고는 하루 평균 838건입니다.

3년간 하루 평균 가정폭력 신고 건수(562건)의 1.5배 수준입니다.

명절 기간 신고는 2013년 776건, 2014년 774건이던 것이 지난해 964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 마포에 사는 G씨는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폭행했다가 입건됐습니다.

같은 달 광주에 사는 H씨는 며느리가 설에 오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충남 당진에 사는 I(45·여)씨는 올해도 추석 전날 대전에 있는 친정에 들렀다가 이튿날 전북 무주에 있는 시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갑니다.

명절 때마다 두 딸을 데리고 20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딸로 태어난 것이 죄고 큰며느리로 들어간 것은 업보'라고 여기지만 두 딸에게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 때문에 아예 연휴 기간 여행을 떠나 명절을 회피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회사원 J(41·부산 금정구)씨는 추석 연휴에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추석, 설마다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 끝에 부모님께 전화해 올해는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처럼 가족과 여행을 떠나겠다는 말에 부모님 핀잔이 이어졌지만,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J씨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이번 명절에는 아내가 '시댁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안 봐도 될 것 같다"고 웃었습니다.

광주에 사는 직장인 K(38·여)씨도 추석 연휴에 남편과 베트남 다낭으로 늦은 휴가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결혼 후 4년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명절 음식 준비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아이 소식을 묻는 것에 스트레스가 더 컸다. 시부모님의 배려로 당분간 설에만 집안 행사에 참석하고 추석에는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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