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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경제] 역설에 갇힌 경제

차병준 기자

입력 : 2016.08.29 18:19|수정 : 2016.08.29 18:19


오늘(29일)은 전통적인 경제 이론이 통하지 않는 경제 현실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역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죠. 저금리의 역설, 저축의 역설, 저유가의 역설, 이런 말들입니다.

  경제의 해법으로 제시된 정책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나 호재로 기대했던 경제 변수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 등을 이렇게 역설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전통적인 이론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역설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경제 상황에 대한 예측이 힘들어지고 문제 해결이 어려워 진다는 겁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딱 그런 상황이죠.
 

Q. 세계 경제, 불황의 터널이 깁니다. 금리를 낮춰도 경기회복이 안되는 상황이 저금리의 역설인 거죠?
A. 경기가 호황일 때는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집니다. 물가도 오르죠. 반대로 불황 때는 시중에 돈이 마르게 됩니다. 물가는 내려가고요. 그래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시중에 자금을 더 공급하는 게 통화정책입니다. 가계에는 소비 여력을, 기업에는 투자 여력을 늘려주는 효과를 기대하는 거죠. 이게 경제이론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춰 경기부양에 나섰습니다. 낮추다 낮추다 제로금리를 넘어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도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1.25%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금리를 내렸어도 기대했던 정책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 쓰라고 금리를 내린 건데 사람들은 저축을 더 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린 나라들의 가계 저축률이 모두 올라갔죠. 우리도 가계 저축률이 2011년 3.7%에서 지난해 8.8%로 올랐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옵니다만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생전 본 적이 없는 초저금리, 마이너스 금리가 사람들의 불안감을 키워 지갑을 더 닫게 하고 저축을 하게 했다는 거죠. 불안이 가져온 저금리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저금리가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는 게 저금리의 역설인데 이게 또  저축의 역설로 이어지는 거죠.
A. 불황 때 저축이 늘어나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저축의 역설입니다. 개인적으로야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하는 게 불황을 이기는 방법일 수 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그러면 시장이 침체됩니다. 소비가 감소하면 생산이 감소하고 기업 매출이 줄어들면 실업률이 올라가고  결국 소득이 줄어든 개인의 소비는 또 감소하고 이런 악순환으로 불황에서빠져나올 수 없다는 논리죠.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와중에 주장한 말입니다.
저축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예로 일본을 많이 듭니다. 일본은 1990년 연 6.0%인 금리를 1995년 연 0.5%까지 낮췄지만, 가계 저축률은 10%대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소비를 늘리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면서 온라인으로 입금해 줬는데 이 돈도 빼 쓰지 않고, 그대로 은행에 저축으로 남았습니다.

금리 낮추는 걸로 안되니까 상품권까지 나눠줬지요. 국민 한 사람당 3만~10만엔의 상품권을 나눠주면서 6개월 안에 본인이 쓰지 않으면 무효로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지만 소비 회복을 위해 푼 돈이 은행에서만 돌면서 결국 불황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Q. 저유가도 한때는 에너지원을 전량 수입해야 하는 우리 경제에 축복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불확실성을 키우는 저유가의 역설이 됐어요
A. 기름 값이 내려가면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개인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됩니다. 그러나 유가 하락이 공급 과잉과 세계경제의 침체가 겹친 상황에서는오히려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저유가의 저주라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연초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내려앉으면서 세계경제가 휘청거렸던 상황이 잘 말해주고 있죠.

  유가하락이 어떻게 저주로 나타나는지 우리 경제 얘기로 풀어서 설명해보죠. 무엇보다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산유국과 신흥국의 경제가 어렵게 됐습니다. 이는 곧바로 조선과 건설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력 수출 분야에서 수주 감소로 나타났습니다. 중동 지역 수주액은 지난해 147억 달러로 한해 전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지난해 적자규모가 사상 최대인 8조 원에 달하게 된 배경인 겁니다. 지금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있죠.

  저유가가 일부 부문에선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서 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제품은 한해 전보다 36%, 석유화학 제품은 21% 감소했습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도 깊어지게 합니다. 원자재인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 물가도 따라서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것도 유가 하락의 영향이 큽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저유가의 역설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Q. 최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올라갔죠. 보통때 같으면 반가운 뉴스인데 우리 경제상황에서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말도 나와요. 신용등급 상향의 역설 아닙니까?
A. 국제 신용평가사인 미국의 S&P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사상 최고인 AA 등급으로 올렸지만 이것이 우리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해외 투자가의 입장에서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안전해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가 있죠. 하지만 등급상향의 의미는 외환보유고나 국가 채권ㆍ채무 같은 대외건전성 측면에서 우리의 디폴트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거지, 수출이나 고용 등의 전망이 좋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경제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신용등급 상향조정 이후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 그리고 가뜩이나 저물가 압력을 받고 있는 경제에 경기침체 속의 물가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상황 등이 신용등급 상향의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Q. 이번에는 실물경제 쪽 얘기를 해볼까요. 삼성전자 실적을 놓고도 역설이란 말이 나오죠.
A. 요즘 주식시장에서 최대 화제 중 하나가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입니다.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올 들어서만 50% 이상 올랐습니다.

  상승의 원동력은 실적입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증가한 8조14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가 8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2014년 1분기 8조4900억 원 이후 9분기 만이죠.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실적 호조는 당연히 좋은 뉴스죠. 그런데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을수록 삼성전자에 대한 우리경제의 의존도 심화라는 고민도 깊어집니다.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가 14조8200억 원인데 이는 30대 그룹이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을 조금 밑돕니다.

  국가경제 전체의 경제력이 삼성전자 한곳에만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죠. 대기업 쏠림현상이 심각한 우리경제에서 특정기업에의 경제력 집중도가 높아지는 부정적인 상황이 심화되는 상황, 바로 삼성전자 실적의 역설입니다.


Q.우리 경제가 이런저런 역설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역설로 표현되는 상황이 많다는 건 타개책이 그만큼 어렵게 된다는 거죠?
A. "경제학자란 전날 자신이 말한 것이 왜 틀렸는지 다음날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제학자 자크 아달리가 한 말입니다. 경제학 이론이 맞지 않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지만 역설이란 말이 나오는 상황도 그런 거죠.

문제는 경제적 파장입니다. 경제 이론에 따라 정책을 시행했는데 결과가 예상대로 안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다는 겁니다. 금리인하를 했는데 경기회복은 안되고 가계부채만 늘어난 상황이 잘 설명해 줍니다. 이렇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이후의 정책 운용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책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닌 겁니다. 역설에 갇힌 경제 상황에서는 더 세심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차茶경제: 차(茶) 한잔의 여유.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듯 차병준 SBS 논설위원의 친절하고 품격있는 경제 해설을 만나 보세요.   

* 기획 : 차병준 / 구성 : 윤영현 / 그래픽 :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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