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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이상화 유품 1만 점 훔쳐 고작 200만 원에 판 가사도우미

입력 : 2016.08.24 10:02|수정 : 2016.08.24 14:08

고미술품 수집업자 꼬임에 45년간 일한 고택에서 범행…1점당 200원 꼴에 넘겨


▲ 압수한 이상화 유품 (사진=연합뉴스)

"집에 옛날 물건이나 못 쓰는 책이 있으면 용돈 벌이로 파세요"

저항 민족시인 이상화 큰아버지 고택에서 45년간 가사도우미로 일한 A(85·여)씨는 2013년 3월 24일 고미술품 수집가 B(61)씨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B씨는 고택 창고에 보관된 이 시인 유품을 넘기면 돈을 주겠다고 꼬드겼다.

B는 서신, 엽서, 서적, 소작계약증서, 술 항아리 등 창고에 쌓인 유품이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고 A씨에게 접근했다.

대구 근대골목 안 '이상화 고택' 인근에 있는 큰아버지 집은 7살 때 아버지를 여읜 이 시인 형제 4명이 함께 자란 곳이다.

애국지사 상정, 상화, 전 IOC 위원 상백 형제가 큰아버지와 주고받은 서신 등은 일제강점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항일정신이 담긴 중요한 사료다.

기초수급대상자인 그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유품 1만1천263점을 훔쳐 B씨에게 넘겼다.

A씨가 평생 살다시피 한 곳에서 민족시인의 귀중한 유품을 훔친 대가로 받은 것은 고작 200만원.

유물 1점에 겨우 200원가량을 받은 셈이다.

범행은 고택에 있어야 할 유품이 고미술품 시장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안 이 시인 사촌동생 신고로 들통났다.

이 시인 관련 전시회를 준비하던 사촌동생은 유품이 무더기로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3개월간 수사 끝에 범행에 가담한 A씨 등을 붙잡고 유품을 회수했다.

경찰은 24일 A씨를 절도 혐의로, B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문화재 매매업자 C(49)씨를 업무상과실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문화재 절도 전과가 있는 B씨는 200만원을 주고 넘겨받은 유품을 C씨에게 3천600만원에 판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오랜 시간 가족같이 생활한 가사도우미가 범행을 저질렀다"며 "항일운동 정신이 담긴 사료가 음성 거래로 사장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회수한 유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대구 출생 이상화 시인은 3ㆍ1운동 당시 대구에서 학생시위를 주도했고 현진건, 백기만 등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며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1927년 의열단 이주암 사건에 연루돼 구금됐고 1943년 수감생활 후유증으로 타계했다.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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