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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꿈 접고 유리창 닦던 의사 탈북자…안타까운 죽음

윤영현 기자

입력 : 2016.08.19 18:04|수정 : 2016.08.19 18:23


어린 자식을 폐병으로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유리창을 보며 슬픔을 억눌렀던 정지용 시인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뎌야 하는 유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다 10년 전 탈북해 한국으로 온 김성구 씨의 가족입니다. (▶관련기사 8월 18일자 SBS 8시 뉴스)

김성구 씨는 아내의 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사선을 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직업도 없이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죠. 김성구 씨는 최근 빌딩 청소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13일, 빌딩 유리창을 닦다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현재 유가족들은 빌딩 청소 업체 측의 안전불감증이 가져온 인재라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사측의 사과와 재발방지책이 나올 때까지 김성구 씨의 장례를 연기하겠다는 유가족의 입장을 들어왔습니다. <편집자 주>


▷ 기자: 김성구 씨는 평소 어떤 분이셨나요?

▶ 김성구 씨 유가족: 정말 평소에 가족을 너무 사랑했던 분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본인의 꿈도 접어두고, 힘든 일 마다치 않고 다 하셨거든요. 힘든 상황에 대해 비관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어요. 주말에 쉬어 본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거나, 환경미화원 일을 하면서 부족한 생활비와 병원비를 모았고요. 최근까지 일하던 회사에도 자부심을 느끼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고마운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셨죠. 자그만 일에도 감사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어요.
▷ 기자: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탈북한 이유가 있다고요?

▶ 김성구 씨 유가족: 탈북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가족 때문이었어요. 고인의 아내가 간 질환을 앓고 있는데, 북한의 의료시설이나 의약품으로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그 부분을 항상 가슴 아파하셨죠.

원래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어요. 본인이 의사인데, 가족의 병을 치료 할 수 없는 상황에 더 괴로워하셨죠. 병이 점점 악화되니까 더는 지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하셨고, 탈북을 결정하신 거예요.

사실 한국에 와서 고인의 아내가 뇌출혈로 오른쪽 반신까지 불편해졌어요. 다행히 2014년도에 간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죠. 꾸준히 치료하면서 최근에는 건강이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야 가족들이 심적인 여유를 갖고 살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사고로 돌아가시니, 가족들 입장에서는 원통하고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 기자: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나요?

▶ 김성구 씨 유가족: 한국에 오면 탈북자들에게 1년 동안은 지원금이 나와요. 병원비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경제적 어려움이 적었을 수도 있겠죠. 국가에서 병원비를 일부 지원받더라도, 치료라는 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탈북자라는 신분으로, 기존에 하던 일과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지금 일하던 부서로 옮기기 전에는 주임으로 근무하셨어요. 그 때는 170만 원에서 180만 원 정도 받으셨죠. 그런데 최근 부서 이동을 하면서 주임이라는 직책을 내려놓게 됐어요. 월급도 40만 원 이상 감봉됐죠. 월급은 140만 원 정도 받으셨지만, 직장이나 일을 부끄러워하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 기자: 장례를 연기하셨다고요?

▶ 김성구 씨 유가족: 네, 사실 장례 일정은 정해져 있었어요. 8월 15일 아침 8시에 발인을 할 예정이었죠. 발인하기 전에 빌딩 청소 업체 측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대책을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과하러 온 사측에서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 때문에 왔다고 말하더군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에 화가 나서, 유가족과 고인 친구들의 언성을 높아졌어요. 그랬더니 사과하러 왔다는 사측의 대표가 귀를 의심할만한 발언을 했어요. 사측은 최선을 다해 사과하는 중인데, 유족들은 사과 받을 자세도 안돼 있다는 거였죠.

사측의 입장을 보면서, 고인이 살아 있었을 때 고인에게 어떤 대우를 해줬을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는 사측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들을 때까지 장례를 연기할 생각입니다.

▷ 기자: 고인께서 일기장을 쓰셨다고요?

▶ 김성구 씨 유가족: 돌아가시고 나서 발견했어요. 일기장에도 가족 이야기뿐이더군요. 북에 두고 오신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고마움을 표현한 글들도 많았어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일기장에 쓰신 거죠.

평소에 고인이 딸에게 직접 전해지 못했던 마음들도 일기장에 쓰셨어요.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를 잘 돌봐주고 있어 너무 고맙다’ 이런 글귀가 있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의사의 꿈은 포기 하지 않으셨어요. 공부하고 싶어하셨는데,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까봐 미뤄두신 거죠. 눈 앞의 현실은 꿈과 다르니까요.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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