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경기 첫날인 17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의 카리오카 아레나3.
김태훈(22·동아대)이 첫 경기(16강전)에서 타윈 한프랍(18·태국)에게 10-12로 지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올림픽 랭킹 2위 김태훈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모두 경험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랭킹 64위인 10대의 무명 선수가 김태훈의 꿈을 깨뜨렸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두 선수가 각각 상대 코치석으로 가서 인사했습니다.
태국 코치석에서 김태훈을 맞이한 것은 한국인 지도자 최영석(42) 감독이었습니다.
태국 태권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2002년 2월부터 대표팀을 이끌어 온 최 감독과 함께 이날 새롭게 쓰였습니다.
올해부터 시니어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한프랍은 김태훈을 꺾은 기세를 몰아 결승까지 올랐고, 태국 남자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시상대 위에 올랐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자오솨이(중국)에게 4-6으로 무릎 꿇었지만 값진 은메달을 태국에 안겼습니다.
태국은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3회 연속 올림픽 여자 49㎏급에서 메달(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처음입니다.
경기 후 만난 최 감독은 "김태훈이 인사하러 왔을 때 '고생 많이 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최 감독은 지난해 동아대에서 국제태권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 태권도부 이동주 감독은 그의 고교 후배입니다.
그래서 동아대생인 김태훈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최 감독은 "태훈이가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라면서 "인사하러 왔는데 도복도 찢어져 있더라. 나도 한국 사람인지라 마음이 좀 그랬다"고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는 가진 것의 200%를 발휘했다. 한국 선수들은 60%만 보여줘도 세계 1위다"라면서 "우리는 언제나 도전자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프랍은 김태훈의 금메달 도전을 좌절시켰지만 결승 진출로 김태훈에게 패자부활전에 나설 기회를 줬습니다.
김태훈은 결국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날 태국은 여자 49㎏급 우승자인 김소희(22·한국가스공사)도 울릴 뻔했습니다.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가 8강전에서 4-2까지 앞서다가 마지막 3라운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김소희에게 머리 공격을 허용해 결국 5-6으로 역전패했습니다.
올림픽 랭킹 2위이자 지난해 러시아 카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그는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습니다.
옹파타나키트가 진 뒤 최 감독은 "메달 기대주는 지고, 도전자는 이겼다"면서 "이런 것이 스포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소희라도 잘해서 금메달을 따야 제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김소희는 최 감독의 바람대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옹파타나키트도 김소희가 결승까지 오른 덕에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번 대회 3명이 출전한 태국은 첫날 경기한 두 명이 모두 메달을 건졌습니다.
최 감독은 한국인 지도자가 외국 대표팀을 지휘하며 국제대회에서 종주국인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부메랑 효과'를 이야기할 때 늘 빠지지 않습니다.
풍생고-경원대를 졸업한 최 감독은 선수 시절엔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태국을 태권도 신흥 강국으로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최 감독은 태국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비롯해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등을 안겼습니다.
호랑이띠인 데다 선수들을 엄하게 지도해 태국 언론으로부터 '타이거 최'라는 애칭까지 얻은 최 감독은 2006년 태국체육기자협회에서 주는 최우수지도자상을 탔고 그해 말 왕실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최 감독은 방콕의 국립 카셋삿대학에서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이 대학은 최 감독을 스포츠과학부의 교수로 영입하려고 교수 임용 규정까지 바꾸기도 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최 감독의 이름을 딴 '최영석컵 국제태권도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