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나무 없애 주차장·통로로…건축물 조경 훼손 도넘어

지난 6월 13일 제주시 오라동 한 다가구주택.

준공 당시 만들어져 있던 16.45㎡ 규모의 조경시설이 얼마 뒤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로 바뀌어 있었다.

주차장과 맞닿아 있던 조경시설이 차량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의 통행에 방해됐기 때문에 건축주가 법을 어겨가며 마음대로 바꿔놓은 것이다.

같은 달 20일 제주시 도남동의 한 의류 소매점 건물에 조성된 66.6㎡의 조경시설 역시 주차장으로 둔갑한 사실이 제주시 공무원에 적발됐다.

이들 건축주는 건축법 위반 행정처분을 받고 원상 복구를 완료했거나 이행 중이다.

이외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조경훼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경시설을 만들 때부터 준공 뒤 바로 용도변경을 마음먹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제주시 아라동의 한 점포겸용 주택의 경우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 깊이의 석분을 채워놓고 그 위에 교목과 관목을 지지대로 덧대 심어 잠시 눈속임을 했다.

비가 오자 돌가루가 쓸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뿌리가 드러났으나 간신히 준공검사를 통과했던 듯 얼마 뒤 조경시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부동산 시장 활황으로 건축붐이 일고 있는 제주에서 많은 공동주택 등이 지어지고 있지만 건축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조경시설 훼손사례가 도를 넘고 있다.

건축법 제42조(대지의 조경)는 '면적이 200㎡ 이상인 대지에 건축하는 건축주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대지에 조경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주지역의 주변을 친환경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조성하기 위해 식물을 이용한 식생 공간을 일정 규모 이상 만들도록 정해 놓은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준공검사를 통한 이용 허가를 받지 못한다.

조경 면적과 식재 수종, 수종의 품질, 토심의 깊이 등을 담은 자세한 조경 기준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적 구속과 기준은 얄팍한 속임수에 의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주시의 경우 지난해 조경훼손으로 7건이 적발됐고 올해 들어서는 7월까지 12건이 적발됐다.

인력 부족으로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민원에 의존하는 현 사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 같은 적발 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건축주는 제한된 공간 안에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길 원하기 때문에 이처럼 조경 면적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거나 준공 후 없애는 일이 벌어진다"며 "옥상정원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는 건축주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조경시설을 없애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집중호우나 태풍에 쓰러질 위험에 놓이기도 한다.

공동주택 등에 심어진 수목은 건축법에 의한 법정조경 수목이기 때문에 소유자가 직접 관리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단속 자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제주시 건축과 좌무경 과장은 "건축물 사용승인 후 대지 내 조경 부분을 임의로 없애 주차공간, 테라스 등으로 불법 전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조경면적 확보를 단순히 건축물 사용승인을 위한 수순 밝기 정도로 생각하는 건축주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후관리를 통한 예방활동과 더불어 건축주의 인식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 조경시설은 이산화탄소 감소, 시민휴식 공간 확보, 열섬현상을 완화해 전기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 에너지 감소 효과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산림청에 따르면 건축물 조경을 비롯한 도시에 조성된 숲은 여름 한낮의 평균 기온을 3∼7도 낮춰주고 평균 습도를 9∼23％ 높여준다며 버즘나무(플라타너스) 한 그루의 경우 하루평균 49.5㎡(15평형) 에어컨 10대를 7시간 가동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 숲에 대한 도시열섬 완화효과를 분석한 결과 1인당 생활권 도시숲이 1㎡ 증가할 경우 전국 평균 소비전력량이 20㎾h 감소하고, 도시의 여름철 한낮 온도를 1.15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