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는 문제아였습니다. 친구들을 잔인하게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은 기표를 동정으로 감쌉니다. 기표의 불우한 가정 형편을 세상에 알리고 성금 운동을 벌입니다. 기표의 사연은 미담이란 이름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한 영화감독은 기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기표는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표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는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상국의 단편소설 ‘우상의 눈물’의 내용입니다.
소설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정심’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공동체는 기표란 이방인을 순치시켜 자신들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 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노력은 (혹은 작전은) 폭력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결하다고 여기는 동정심은 때로는 거칠고 사나운 감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불편합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 소설이 유독 많이 생각나는 이유는 기자란 직업이 동정심 유통 과정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지금 올림픽 취재를 위해 리우에 와 있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올림픽 난민팀(ROT)’에 대한 취재 열기가 뜨겁습니다. 시리아, 남수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내전을 피해 난민촌으로 흘러들어갔던 10명의 선수들입니다. 빗발치는 관심에 올림픽 프레스센터에서만 두 번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기자들은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내전은 어땠는지, 어떻게 탈출했는지, 난민촌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달리 말하면, ‘당신들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걸 지독하게 각인시킵니다. 결국,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 라미 아니스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미래에 대해 질문을 해 달라. 어두운 과거에 대한 질문은 그만해주셨으면 좋겠다.”
난민 선수들의 선수촌 입촌식 현장을 찾았습니다. 두 번의 기자회견을 했음에도 기자들은 역시나 벌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또 묻습니다. “기분이 어떤가.” “다른 난민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우연찮게 입촌식 입장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난민 선수단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헤엄쳐 건넜던 18살 소녀 유스라 마르디니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극적인 사연 때문에 유명인사가 된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입니다. 업이 기자인지라 인터뷰 해보겠다는 요량으로 이름을 불러봤습니다. 하지만 마르디니의 답은 단호했습니다. “미안하다. 질문하지 말아 달라.” 마르디니는 공식 기자회견을 제외하고 지금껏 7백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왔습니다.
올림픽은 공존과 화합의 장입니다. 난민들의 올림픽 도전기는 안 그래도 흉흉한 지구촌, 간만에 나온 훈훈한 드라마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삶의 궤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품성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질문 세례를 퍼부으며 난민 선수들의 불우했던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합니다. 그들의 과거는 동정의 이름으로 70억 지구촌 곳곳에서 소비됩니다. 세계는 그들의 사연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나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위한 것인지 모른 채 말입니다.
난민 선수들은 자신들도 평범한 지구촌의 일원임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이라는 감정선 안으로 그들을 애써 밀어내며 구분 짓기를 합니다. 난민 선수들은 이게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자신들이 6천 5백만 난민의 희망이라는 공적 의무감 때문에 그 불편함을 애써 억누르고 있을 뿐입니다. “난민 올림픽팀이 처음으로 결성됐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압박이 너무 크다. 나는 ‘난민’이란 꼬리표를 지우고 싶다. 그건 내 인생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난민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며, 이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난민팀 육상 선수인 이에크 푸르비엘이 올림픽 직전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희망의 상징 난민 선수단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우상’일 겁니다. 그들은 분명 올림픽 출전만으로도 희망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인의 축제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어차피 끝납니다. 그들이 올림픽 홍보 수단으로 소모되고, 그리고 잊혀질 ‘우상’의 ‘눈물’이 되지는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자 생활 11년차,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지금까지 만났던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의 눈물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