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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 아껴 빚 갚으라더니…내 돈으로 명품에 아파트까지"

입력 : 2016.08.05 14:13|수정 : 2016.08.05 16:44


"나더러 택시비, 단돈 만원도 아껴 빚을 갚아야한다고 해놓고, 정작 내가 생고생해 부친 돈을 흥청망청 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니 정말 울화통이 터집니다."

18년간 여고 동창생인 권모(44·여)씨의 현란한 말에 속아 노래방 도우미 등으로 일하며 13억원을 뜯긴 김모(44·여)씨는 최근 며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지난 10여년 동안 권씨가 한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돌이켜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에 김씨는 치가 떨렸다.

권씨는 1998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고교 동창인 김씨로부터 모두 2천389차례에 걸쳐 8억여원(김씨 주장 13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경찰에 구속됐다.

피해자 김씨는 5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오랜 기간 10억원이 넘는 돈을 준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순간순간 친구가 하는 말이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직장생활을 하던 1994년 친한 단짝 친구를 통해 권씨를 알게 됐다.

권씨가 300만원이 급히 필요한데 빌려줄 수 있겠느냐는 친구의 말이 몸서리치게 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단짝 친구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었던 김씨는 권씨에게 돈을 빌려줬고 서로 친하게 지냈다.

돈을 갚지 않은 권씨는 김씨의 사주가 좋지 않아 가족이 죽을 수도 있으니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권씨가 수시로 굿을 한 뒤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물론 김씨는 굿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김씨는 부적 등을 들고 와 붙이면 괜찮을 것이라는 권씨의 말을 믿고 굿 비용을 매달 갚았다.

권씨는 굿을 하려고 사채를 빌려 썼다, 이 빚을 못 갚아 사채업자에 끌려가 부산 영도의 한 야산에 생매장당했다가 등산객에게 발견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동생도 끌려가 구걸까지 했다는 등의 거짓말로 김씨를 사실상 협박했다.

김씨는 "권씨가 너무 말을 잘해 오히려 빚을 더 열심히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자, 김씨는 부모님이 있던 일본으로 건너가 게임장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계속 권씨에게 돈을 보냈다.

당시 엔화 강세로 한 달 평균 500만원 정도를 꼬박꼬박 권씨에게 무통장 입금으로 부쳤다.

권씨는 2∼3개월에 한번씩 일본으로 찾아와 굿으로 김씨 가정을 보호해주고 있다며 부적과 액운을 막아준다는 옷을 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권씨는 "김씨가 친구한테 돈을 빌렸는데 못 갚으면 교도소에 들어간다"며 김씨 부모에게도 사기를 쳐 수백만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김씨가 일본에서 권씨에게 송금한 돈만 5억원이 넘었다.

2009년 10여년 만에 입국한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다.

권씨가 가족과 함께 살면 칼부림 등 흉흉한 일이 생기고 물장사를 해야 하는 팔자라는 이유였다.

권씨는 김씨에게 2차(성매매)까지 요구했다.

이는 김씨에게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낼 목적이었다.

권씨는 김씨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돼 이를 해결하려고 사채 6천만원을 빌려 썼다고 갚으라고 압박했다.

성관계 동영상 존재 역시 거짓말이었다.

김씨는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권씨의 협박에 하루하루 노래방 도우미를 하며 번 돈을 일수 찍듯 권씨에게 부쳤다.

최소한의 기본 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돈이 고스란히 권씨 통장으로 들어갔다.

김씨가 보관 중인 최근 3년 치 입금 전표 총액만 3억3천600여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지난 6월까지 노래방에서 일하며 7년간 말 그대로 뼈 빠지게 번 7억∼8억원을 권씨에게 갖다 바쳤다.

김씨는 그동안 가족과 생이별한 채 찜질방과 고시텔을 전전하며 '앵벌이 노예'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권씨는 김씨를 한 번씩 만나 자신이 얼마나 사채업자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지 거짓말을 늘어놨다.

식당, 목욕탕 등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권씨는 자신의 말과 달리 '럭셔리'한 생활을 했다.

명품 프라다 가방과 베테가 보네타 가죽지갑에 오메가 시계를 착용했다.

권씨는 모두 빌린 것이라고 둘러댔다.

권씨는 김씨 돈으로 전세금 2억9천만원짜리 부산 강서구의 고급 아파트(145.2㎡)에서 살며, 부산 유수의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며 VVIP 고객이 됐다.

가족과 함께 서유럽·터키·일본 등의 해외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검거 당시 권씨의 집 금고 속에는 현금 7천만원이 발견되는 등 권씨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씨의 사기 행각은 꼬리가 잡힐 때까지 더욱 악랄하게 계속됐다.

이번에는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서 돈을 훔쳐 합의하지 않으면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다며 김씨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것이다.

한동안 연락을 끊은 권씨는 지인을 앞세워 김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목돈을 마련하라고 종용했다.

권씨의 지인은 또 권씨가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절에 가서 공을 들여야 한다며 치킨, 추어탕 등의 음식을 강서구 아파트로 배달하도록 김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 음식은 권씨가 먹으려고 시킨 것이었고 문자를 보낸 이 역시 권씨였다.

결국 권씨가 교도소에 수감됐다며 거짓말했고, 면회를 간 김씨가 교도소에 권씨가 없는 사실을 확인, 경찰에 신고하면서 20년 가까이 계속된 권씨의 사기행각이 들통났다.

그사이 김씨는 물론 김씨 가족까지 빚더미에 앉았다.

경찰은 수사 초기 18년간 권씨가 김씨의 노예 같은 생활로 번 돈으로 부유한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범행을 자백한 권씨는 경찰에서 "돈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는데 김씨가 순진하게 내 말을 잘 믿어 계속 범행을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20대 중반에 만난 권씨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김씨는 "잃어버린 내 삶을 어떻게 보상받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대질신문에서 꼭 권씨를 만나 따지겠다"고 흐느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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