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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SNS에 떠도는 과거 '흑역사'…"제발 지워주세요"

윤영현 기자

입력 : 2016.08.04 13:01|수정 : 2016.08.04 14:03


취업준비생 B씨는 한 기업의 면접을 준비하던 중 불현듯 걱정이 생겼습니다. 기업 인사부서에서 지원자의 인성을 파악하기 위해 SNS를 검색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B씨는 과거에 SNS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욕설과 포털사이트에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취업과정에서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던 B씨는 게시물과 댓글을 삭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일일이 찾는 것도 문제이고, 삭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노릇입니다.

지난 19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57%는 웹서핑 중 개인정보나 그동안 잊고 싶었던 자신의 인터넷 게시물을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종류는 크게 4가지로 ‘스스로 다시 읽기도 민망한 오그라드는 글(30%)’, ‘개인 신상정보(21%)’, ‘부정적인 글’ 그리고 ‘탈퇴한 계정의 게시물’(각 17%)이 대표적이었습니다.
● 우리에겐 잊혀질 권리가 있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의 글이나 사진 또는 성향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개인의 정보에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 수정 또는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죠. 잊혀질 권리가 처음으로 법적 인정을 받은 때는 2014년입니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가 집을 경매 당할 상황에 처했는데, 그의 사정이 지역 신문과 인터넷 언론에 실리게 되었죠.

다행히 빚 문제를 해결했지만, 해당 기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신문사와 구글을 상대로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승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인터넷 사용 빈도와 범위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면서 자신의 인터넷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잊혀질 권리가 처음으로 제도화 된 것입니다.

● 잊혀지기도 너무 복잡하다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이 시행됨에 따라 일부 포털사이트와 모바일 서비스는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용자들이 이 제도의 존재 여부도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비스 제공 초기라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용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도 큽니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페이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고객센터 내 공지사항에도 요청을 받는다는 글이 없죠. 신규 서비스임에도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바로가기’ 배너조차 없습니다.

설령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방법을 찾았다 해도 그 과정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한 포털사이트의 자기게시물 삭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고객센터에서 ‘신고하기’ 페이지로 접속한 후,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페이지로 다시 한 번 접속해야 비로소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요청 페이지에 접속했다고 해서 게시물이 삭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게시물 접근배제를 요청하기 위해 제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접근배제를 원하는 게시물 및 게시물의 위치자료(URL)’, ‘요청자가 해당 게시물을 게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접근배제를 요청하는 사유’로 크게 3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3가지가 모두 준비됐어도 요청은 반려될 수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측에서 입증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디지털 장의사를 알고 계시나요?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과정이 까다롭다 보니 최근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장의사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 온라인상에 있는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지워주는 사람이나 업체를 말합니다. 디지털 세탁소라고 불리기도 하죠. 한국고용정보원은 5년 내 주목받을 직업으로 디지털 장의사를 꼽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온라인 상조회사가 사망한 사람의 인터넷 흔적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디지털 장의사의 시초입니다.

최근엔 인터넷상의 게시물이나 댓글로 인한 분쟁이 늘어나면서, 각종 기록과 정보를 삭제하는 서비스를 통틀어 지칭하게 되었죠. 국내에는 30여 개의 업체가 있습니다. 이런 인터넷 기록 삭제 대행업체의 서비스 가격은 50만 원~200만 원 정도입니다.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 대해 성인남녀 78%는 ‘이용해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용해보고 싶은 이유로는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이나 과거에 대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 32%로 가장 많았고,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번거롭게 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의견 역시 29%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죠. 업계 안팎에서는 디지털 장의사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까지 동원되는 ‘잊혀질 권리’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잊혀질 권리’가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2014년 영국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인터넷에 게시된 자신의 수술 결과에 대한 글들을 지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비난이 거세졌습니다. 삭제된 글은 의사의 형편없는 수술 실력을 고발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완벽한 합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 역시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강제성을 가지지 못하죠. 도입 단계인 만큼 수정될 여지도 많습니다. 인쇄 매체 시대였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 시대에는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지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터넷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과 신상털기가 횡행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잊혀질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잊혀질 권리’와 ‘알 권리’의 균형점은 어디일까요?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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