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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 잠든 곳에서 매일 만나요" 영동고속도로 사고 유족들

입력 : 2016.08.04 07:22|수정 : 2016.08.04 07:22


"우리 딸 얼굴이 자꾸 떠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합니다" 지난달 17일 발생한 영동고속도로 5중 추돌사고로 딸(21)을 잃은 이모 씨가 3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씨의 딸은 중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와 친구들과 강원도 강릉으로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에 변을 당했다.

차량 정체로 서행 중이던 이 씨 딸과 일행이 탄 K5 승용차를 뒤따르던 관광버스가 그대로 들이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결과 당시 버스 속도는 시속 91㎞였고 이 씨 딸 일행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경기도 용인 집에서 가까운 한 추모공원에 딸을 묻었다.

함께 승용차에 타 있다가 운명을 같이한 중학교 동창 3명도 곁에서 잠들었다.

이 씨는 매일 딸을 찾아간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은 지난 2일에는 아이스커피 4잔을 사다가 딸과 친구들이 잠든 곳에 놓았다.

그는 "딸을 보러 가면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이 사고를 당한 딸 친구들의 부모들을 만나요. 딸들이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며 견디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들 부모 가운데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온 딸을 떠나 보낸 어머니도 있다.

숨진 장모(21ㆍ여) 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없이 어머니, 동생과 살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집안을 이끌었다.

그런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혼자라는 이유로 뭘 하든 항상 제게 도움이 되려고 했어요. 이번에도 알바비를 아껴 강릉까지 갔는데, 왜 1박만 하고 오냐고 했더니 2박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라며 오열했다.

다른 아버지는 아들만 셋인 집안의 유일한 딸을 가슴에 묻었다.

대학 시절 과대표를 맡고 봉사활동에 열성적이던 딸은 졸업 후 어머니의 일을 돕던 중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에게서 딸들을 앗아간 이번 사고는 관광버스 운전기사 방모(57) 씨의 졸음운전 때문에 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당시 관광버스를 뒤따르던 차량이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에는 사고 장소에서 7∼9㎞ 전 2차로를 주행하던 버스가 차선을 살짝 넘나들며 비틀거리는 모습이 담겼다.

사고 당시 장면을 찍은 영상에는 1차로를 주행하던 관광버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 이 씨 딸 일행이 탄 승용차를 덮치는 장면이 찍혔다.

방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신이 몽롱한 반수면 상태에서 운전하고 있었다"며 졸음운전을 시인했다.

방 씨는 2014년 음주운전 3회째 적발로 면허가 취소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대형 운전면허를 재취득한 방 씨는 관광버스 회사에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사고를 냈다.

그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돼 오는 19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씨 등 유족들은 지난 2일 방 씨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강원도 춘천에서 열리는 방 씨 재판에도 매번 참석해 재판 진행 과정을 지켜볼 예정이다.

방 씨에 대한 감정을 묻자 이 씨는 "사고 이후 현재까지 전화 한 통화 없었어요. 그 사람의 친인척으로부터도 사과 한마디 못 들었습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 사람이 8ㆍ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면허를 재취득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봤는데 말도 안 됩니다. 수차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던 사람이 쉽게 재취득해 사고를 냈으니 재취득 절차, 기준 등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 씨는 사망자 4명, 부상자 37명을 낸 이번 사고로 총 680점의 벌점을 받아 '벌점초과'를 사유로 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행정처분은 형사처분과 달리 대형 교통사고를 낸 경우 가중 처분할 별도의 규정이 없어 1년의 결격 기간이 지나면 다시 면허를 딸 수 있다.

방 씨가 8ㆍ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다면 곧바로 재취득할 수도 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와 같은 참극을 막으려면 관광버스나 트럭 등 대형차량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졸음운전 등으로 대형사고를 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유족은 "버스나 트럭 같은 대형차량 운전자들이 보다 경각심을 갖고 운전해서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대형차량을 위한 전용도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대형차량에는 운전석을 찍는 블랙박스를 의무로 설치하도록 해 운전자로 하여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사고 발생 시 원인을 확실히 밝힐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방 씨에게 적용된 법의 최대 형량은 고작 5년 이하의 금고형에 불과한데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잘못으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돼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너무 힘들지만 우리 딸들이 더 좋은 세상에 갔다고 믿으며 견디고 있어요. 부디 우리 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사회가 좋은 쪽으로 바뀌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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