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바람 속에 전 세계에 전기차 붐이 일고 있습니다. 디젤 자동차가 한동안 클린디젤이라면서 각광을 받았었는데, 최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전기차 바람이 더 거세졌습니다. 각 나라, 업체들의 개발 열기가 뜨겁고 판매량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산업의 이 차세대 먹거리 쟁탈전에서 우리는 좀 뒤처져 있습니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가 자칫 변두리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전기차 산업을 짚어보겠습니다.
Q. 세계 전기차 시장의 현황부터 알아볼까요?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죠?
A. 올들어 5월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3만9천여 대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5% 증가했습니다. 23만여 대라는 수치로만 보면 별거 아닌 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의미가 있는 건 빠른 성장 속도고 이 속도가 앞으로도 계속 더 빨라질 거라는 전망입니다. 우선 글로벌 기온상승을 2℃ 이하로 억제하기로 합의한 지난해 말 파리 기후협약이 각 나라의 친환경차의 개발과 보급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는 상용화 단계를 넘어서 대중화 초기 단계에 접어든 전기차 모델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전기차 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겁니다.
Q. 대표적인 게 테슬라에서 새로 내놓은 전기차죠?
A. 전기차 하면 테슬라, 테슬라하면 전기차죠. 이제는 거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죠. 초기부터 전기차 산업을 주도해 온 테슬라인데 사실은 만년 적자기업입니다. 전기차를 상용화는 했지만 비싼 가격과 짧은 주행거리 탓에 일반인들이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보급형 전기차를 내놓았습니다. 모델3라는 전기차입니다. 한 대당 가격이 3만5천 달러, 우리 돈 4천만 원쯤 되는데 각 나라에서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면 실제 구입가격은 2천만 원대로 내려옵니다. 한 번의 완전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346km는 현재 전기차의 두 배 정돕니다. 가격과 주행거리, 전기차의 단점 이 두가지를 크게 해결한 겁니다. 2018년부터 본격 보급되는데 사전 예약만 지난 4월부터 한 달 반 사이에 40만 대 가까이 몰렸습니다. 특히 예약 이틀 만에 27만 대의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게 왜 대단하냐하면 지금까지 가장 인기있었던 전기차 모델 닛산 리프의 6년 누적 판매량을 이틀 만에 뛰어넘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의 관심이 많아진 거고, 그만큼 전기차의 대중화도 빨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Q 국내에선 현대차도 첫 양산 전기차를 내놓지 않았습니까?
A. 국내 최초의 전기차 브랜드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입니다. 현대자동차가 1991년 쏘나타로 순수 전기차 개발을 시작한 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양산 전기차입니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1㎞인데 현재 국내 출시중인 모든 전기차 중에서는 가장 깁니다. 현대차는 오는 2018년에는 1회 충전 주행거리 320km 이상의 SUV 전기차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2018년에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대부분 300km를 달리는 전기차를 양산한다고 발표하고 있어서 전기차 산업의 분수령이 되는 해가 될 전망입니다.
Q. 전기차는 초기에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주도했는데 지금은 중국의 성장세가 더 눈에 띄는 상황이죠?
A. 그동안 세계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 르노-닛산 같은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주도했는데, 중국이 어느새 전기차 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올들어 5월까지 전기차 8만8천여 대가 팔려서 지난해 상반기보다 판매량이 66%나 늘었습니다.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36%로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특히 지난달 전기차 판매량은 1년전보다 154% 증가한 3만4천여 댑니다. 역대 월별 최다 판매 기록이자 유럽과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을 합한 것보다도 많습니다.
이런 수요를 기반으로 중국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가 판매량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이미 세계 1위 전기차 업체로 올라서 있습니다. 가솔린 자동차 경쟁에서는 후발주자로 맥을 못 추던 중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정상을 노리는 이른바 '전기차 굴기'를 본격화하고 있는 겁니다.
Q. 중국은 심각한 환영오염 문제 때문에 전기차 산업을 더 독려하고 있는 거죠?
베이징을 비롯한 전 국토의 7분의 1이 심각한 유독 스모그에 시달리고 있는 게 중국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솔린 자동차에 대해서 자동차 번호판 발급 수를 제한하고 경매나 제비뽑기로 배정하는 등 온갖 제한을 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전기차에 거는 기대는 차세대 성장 산업이기도 하고 환경 문제 해결책이기도 한 겁니다. 또 이런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핵심 부품인 전기차 배터리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수십조 원을 배터리 산업에 투자하고 외국 배터리업체는 각종 규제로 견제하면서 자국 업체 키우기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Q. 해외에서는 이렇게 전기차 붐이 불고 있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른 거 같아요. 판매량이 오히려 줄고 있다죠.
A. 최근 5년 동안 세계 전기차 시장은 100배가량 급증했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누적 보급대수 6천대에도 못 미칩니다. 올들어 5월까지 전기차 판매량 다시 한번 비교해보면 전 세계 판매량은 15% 늘었고 중국에선 66%가 늘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844대 판매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했습니다.
올해 전기차 신규 보급 대수를 정부가 8천 대로 잡았었는데 너무 격차가 크죠. 중국이 거대한 소비시장을 기반으로 전기차 산업을 띄우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국내에서도 소비 기반이 없으면 전기차 산업이 성장할 수가 없는 거죠. 현대차가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개발한 건 의미가 있지만 국내 소비 시장이 받쳐주지 못하면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Q 국내에서 전기차가 이렇게 부진한 이유, 아무래도 충전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요?
A. 사실 우리는 전기차 산업이 성장할 여건이 좋습니다. 세계 5위권의 자동차업체가 있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배터리업체들도 있죠. ICT 기술력도 세계에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기반을 갖고도 뒤쳐지고 있는 이유는 열악한 전기차 인프라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전을 위한 기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운전자들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전기차를 살 생각을 갖지 못하죠.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전국 전기차 등록대수는 5767대인 반면 급속 충전 설비는 337기로 평균 17.1대당 1기꼴입니다. 중국이 3.8대당 1기, 미국은 6.6대당 1기, 일본이 3.2대당 1기니까 비교가 많이 되죠.
Q. 차세대 차동차 산업의 먹거리라고 했는데 전기차 분야가 이렇게 부진하다가는 자칫 우리 자동차 산업이 흔들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A. 어렵게 자리잡은 자동차 강국의 위치가 불안해집니다. 과거 애플이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았을 때 국내 휴대폰업체들 많이 흔들렸죠. 기존 피처폰이 주는 수익에 도취해 있다가 급속히 불어닥친 스마트폰 바람에 고전을 했습니다. 당시 삼성이 첫 스마트폰이라고 내놓은 게 옴니아라는 휴대폰입니다. 저도 이 옴니아를 구입해 사용했었는데 사실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비난이 쏟아졌었죠. 그래도 삼성은 빨리 따라잡았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만 한해 수조원 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죠. 반대로 휴대폰 업계의 맹주이던 노키아는 이 스마트폰 트랜드를 따라 잡지 못해 몰락했습니다. 비슷한 교훈을 주는 사례들 많습니다. 필름업계의 제왕이던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트랜드를 따라집지 못해 무너졌고 아날로그 TV의 강자 소니도 디지털TV 시장에 뒤져서 퇴조를 했습니다. 전기차 산업도 마찬가집니다. 현재 우리가 자동차 강국이기는 하지만 전기차 트랜드로 바뀐 세상에서도 강자로 남는다는 보장은 없는 겁니다. 조선,철강 같은 기존의 우리 주력 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마저 흔들리면 우리 경제 버티기가 참 어렵습니다.
Q.정부가 뒤늦게 정책직 지원방안을 내놓기는 했어요. 어떤가요?
A.전기차를 유망수출품목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을 정부가 얼마전 내놓았습니다. 국내 신규 차량의 5%인 8만여대를 전기차로 보급해 4년 뒤 국내 누적 보급대수를 25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전기차 급속 충전소를 서울과 제주에 2㎞당 1기씩 설치하고, 전국 4000개 아파트 단지에 3만기의 완속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취득세나 보험료, 주차요금 등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고 전기차 구매보조금도 늘렸습니다. 얼마나 실효성있는 지원 대책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과 제주에 2㎞당 1기씩 급속중전소를 설치한다는 방안도 예산과 부지 확보 문제로 제대로 실현되겠느냐 이렇게 보고 있는 거죠.
전기차에 대한 외국의 지원 사례를 몇가지 살펴볼까요. 미국에서는 다수의 주에서 다인승 전용차선 진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노르웨이도 버스전용차선 주행을 허용하고 유료 주차장 주차비를 면제해줍니다. 중국은 올해 공무원 차량의 30%를 친환경 차량으로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전체 인구의 대부분이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공동 단지내에 충전기 설치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또 최근 급속충전 유료화 방침이 발표됐는데 전기차 보급이 어느 정도 이뤄질 때까지는 유료화를 늦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현재 전기차 업무를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너무 많은 부처가 따로 맡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일관된 업무를 처리할 수 잇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제기되는 겁니다. 전기차는 전기전자와 기계, ICT 기술이 한 곳에 모이는 최첨단 융복합 산업이기 때문에 산업 연관 효과가 대단히 큽니다. 이런 중요한 시장쟁탈전에서 우리가 좀 뒤처져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도 좀 공격적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차茶경제: 차(茶) 한잔의 여유.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듯 차병준 SBS 논설위원의 친절하고 품격있는 경제 해설을 만나 보세요.
* 기획 : 차병준 / 구성 : 윤영현 / 그래픽 :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