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녀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23년째 활동하고 있는 최고령 대법관입니다. 나이도 많고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그녀의 이름으로 소셜미디어에 블로그도 만들어졌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도 수 천장이나 팔렸습니다. 그녀를 패러디한 글과 사진은 SNS에서 큰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여성 해방 운동가로 불리는 그녀의 진보적인 성향과 판결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환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낙태의 합법성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판결들을 주도했습니다. 지난 1996년에는 버지니아 군사학교가 여성의 학교 입학을 금지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남녀차별의 낡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판결도 내렸습니다.
미국 사회내 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판결을 잇따라 내리면서 진보적인 젊은 세대는 그녀에게 환호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 지난 2013년과 지난 2015년 두 차례나 동성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판결을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는 우리나라 최초 동성결혼 커플과 트렌스젠더 가수 하리수 씨 등 성소수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녀가 최근 구설에 올라 망신을 샀습니다.그녀는 지난 10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정치 발언, 그것도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트럼프를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과 법원이 어떤 곳이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그녀는 한 발 더 나아가 “트러프는 사기꾼(faker)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다.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면 바로 말한다. 자존심만 세다”고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트럼프가 세금납부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언론이 트럼프에 대해 너무 신사적인 것 같다”고 불만도 표시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트럼프가 아니겠죠,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터무니 없는 정치적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고, 정신이 나갔다"며 린즈버그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공화당 1인자인 라이언 하원의장도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도 편견에 차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비판에 가세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석 달여 앞두고 연방 대법관이 유력 대선후보의 자질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인데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당장 사법부의 정치 개입이라며 난리가 나고 사퇴압력이 거셌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대법관의 정치개입 행위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00년 앨 고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히자 당시 보수성향의 산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민주당의 승리는 끔찍하다”며 정치적 의사를 드러낸 적이 있고, 19세기에는 대법관이 대통령 선거운동에 대거 참여하면서 대법원개정이 늦어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도 법관의 정치적 언행을 삼가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은 이 규정조차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적절치 못한 그녀의 발언에 대해 언론들은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했던 뉴욕타임스는 “정치적 의견과 모욕적인 발언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워싱턴포스트도 “대법관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말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여론에 밀려 그녀는 결국 나흘 만에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발표문을 통해 “돌아보니 자신의 최근의 발언들이 경솔(ill-advised )했다”며, “후회한다”고 밝혔습니다. “판사들이 대선후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신중하겠다”고 몸을 낮췄습니다.

긴즈버그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것은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입니다. 그녀가 트럼프를 공개석상에서 구두로 비난하지 않는다 해도 그녀의 배경과 성향을 보면 그녀가 누구를 지지하는지는 미뤄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노법관의 부적절한 발언은 거센 역풍을 몰고 왔고, 결국 사과까지하면서 그녀의 경력에 큰 흠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보수와 진보로 갈린 미 연방대법원의 극단적인 이념성향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낸 추한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