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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수락산에서 6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있었죠. 바로 다음 날 이 여성과 일면식도 없던 60대 남성 김학봉이 경찰에 자수했고, 지난주 드디어 검찰이 김학봉을 구속 기소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이 애초에 적용했던 강도 살인 혐의가 뒤집히고 최종적으로 살인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경찰은 끝까지 '묻지마 살인'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검찰은 결국,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지은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병남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산에 올라갔다는 게 피의자 김학봉의 최초 진술이었습니다. 정해진 범행 대상도, 범행 이유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수사 내내 묻지마 살인보다는 강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경찰의 계속된 압박에 김학봉이 돈을 빼앗으려고 피해자를 위협했으나 반항해서 살해했다고 진술하자 경찰이 최초 진술을 묵살하고 이 진술에 방점을 찍은 겁니다. 그리고는 살인이 아닌 강도살인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백경흠/노원경찰서 형사과장 : 목적이 있잖아요. 목적으로 흉기도 구입하고 사전답사도 했고 그랬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걸 금품을 노린 범행이지, 어떤 묻지마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 이렇게 판단한 겁니다.]
그렇지만 김학봉은 검찰로 송치되던 날에도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 짜증이 나서, 화가 나서"라고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피해 여성이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를 하며 끝내 묻지마 살인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결국, 검찰 수사에서 "강도"자를 뺀 그냥 "살인"혐의로 판가름났습니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손바닥엔 강도살인에서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협 없이 곧바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뜻이죠.
또, 찔린 부위가 신체에 가장 치명적인 목과 배로 한정됐다는 점과 돈을 거의 안 가지고 다니는 등산객을 노렸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의 주머니 지퍼가 그대로 닫혀 있었던 점도 처음부터 강도의 의도가 없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돈을 훔치려 사람까지 죽여놓고 제대로 주머니도 뒤져보지 않았을 리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3자인 범죄 심리 분석가들도 인과관계를 추정할만한 단서가 없다는 점과 김학봉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점을 들며 이번 사건은 묻지마 살인으로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수사 결과가 뒤바뀐 데 대해 경찰은 김학봉이 검찰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 김학봉은 수사 초기부터 적어도 언론 앞에서만큼은 불특정한 누군가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경찰의 수사 노력을 폄훼하려는 건 아니지만, 전 기자는 이번 수사를 지켜보며 유독 경찰만 다른 쪽에 서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데요, 혹시라도 경찰이 앞서 벌어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국민을 불안감에 떨게 했다는 비난을 들으며 한바탕 곤욕을 치렀던 터라, 또 묻지마 범행이어서는 안 된다는 틀에 맞춰서 수사를 진행한 건 아닌지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도 지적했습니다.
▶ [취재파일]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고?…경찰 판단 뒤집은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