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를 짓눌렀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우려가 현실화됐다.
그동안 브렉시트 변수로 인해 심한 변동성을 보였던 국내 금융시장은 이날 브렉시트 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식과 외환시장이 동시에 패닉에 빠지는 등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 영국 무역·금융 비중이 크지 않아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외국인 자본 유출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글로벌 교역 위축이 우리의 수출 감소로 이어지면 당분간 경기의 하방위험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금융시장 급락세 내주 초까지 이어질 듯 브렉시트 현실화로 국내 외환·금융시장에선 '패닉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2시 현재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30원 가까이 상승해 달러당 1,180원을 뚫고 올라갔다.
코스피는 전날 종가보다 75.31포인트(3.79%) 떨어진 1,911.40을, 코스닥은 36.04포인트(5.30%) 하락한 643.48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그동안 대체로 영국이 EU에 남을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한국 금융시장도 당분간 부정적 영향권 아래 놓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영국계 등 유럽계 자금 이탈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 영국계 자금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주식 36조4천77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 상장주식 보유액(433조9천600억원)의 8.4%로 미국계(172조8천200억원) 다음으로 큰 규모다.
영국이 EU에서 빠져나가면 영국에 대한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이 많은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유럽계 자금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말 현재 아일랜드는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15조5천740억원, 네덜란드는 14조2천850원어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합치면 30조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가격 폭락세가 다음 주 초 이후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증권 팀장은 "브렉시트 자체로 인한 충격은 코스피 1,850선 정도에서 멈출 것으로 본다"며 단기 충격으로 주가가 10%, 원화 가치도 10%가량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브렉시트로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낙폭이 과도하다"며 "증시에서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가더라도 미국·일본·중국계 자금 유입세는 이어질 것이며, 채권시장에서 이탈하는 자금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브렉시트로 세계 각국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팀장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시간을 두고 분리주의 움직임이 커지면 주가가 반응할 수 있다"면서 "향후 주가는 분리주의가 얼마나 퍼지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 영국·EU 수출에 악영향…실물경기도 '빨간불' 대 영국·EU 수출에 대한 악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하반기 경기 회복의 동력으로서 수출에 걸었던 기대감도 당분간 힘을 잃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 영국 수출금액은 72억1천700만달러, 대 EU 수출금액은 465억4천300만달러다.
브렉시트 여파로 영국과 EU 지역 실물경기가 위축되면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수출 실적에 더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향후 1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7.5% 감소할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영국뿐만 아니라 EU 지역의 GDP 감소도 예상돼 한국과의 교역 수요는 더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유예기간이 끝나는 2년 뒤다.
브렉시트가 결정되더라도 실제로 영국이 EU를 탈퇴할 때까지는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는 현재 유럽 단일 시장체제가 유지되고 영국과 EU 국가들이 한국을 비롯한 제3국과 맺은 특혜무역 협정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유예기간 내 영국과 EU가 한국 등 다른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다시 협상해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올해 국내 경기 회복세가 더디고 구조조정 등 악재까지 산재한 상황에서 브렉시트 충격의 체감도는 다른 국가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진한 수출이 브렉시트 때문에 더 크게 뒷걸음질 치고,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의 심리까지 얼어붙으면 또 다른 경로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대 영국·EU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만큼 충분히 대비하면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수출금액 기준 영국 의존도는 1.4%, EU 의존도는 9.1%로 집계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규철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영국과 직접 연결된 부분은 많지 않아 실물 부문까지 전파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다"면서 "우리 경제 펀더멘털이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니다"고 진단했다.
◇ 물 건너간 3% 성장…하방위험 커진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당정간담회에서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인 3.1%보다 0.3%포인트(p) 하락한 것으로 정부가 '3%대 성장'이라는 목표를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정부는 그러나 브렉시트 가결 가능성이 커지자 다시 입장을 바꿨다.
정부는 이날 점심시간 무렵 배포한 자료에서 "브렉시트 투표 결과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불과 몇 시간 전 당정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을 번복한 셈이다.
당초 정부는 영국에서의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부결될 것으로 나오자 이를 감안해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내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브렉시트발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재정보강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당정간담회에서 "오는 28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추경 여부를) 분명히 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추경 편성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또 "추경의 내용은 결국 구조조정을 어떻게 신속히 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될 텐데, 그 (구조조정) 수단을 국회 내에서 (어떻게) 소화할지가 초점"이라고 말해 추경이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자리 대책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했다.
관건은 추경 편성 시기와 규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6월 201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전제한 상태에서 이를 3.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총 22조원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가 20조원대의 '슈퍼 추경'을 편성해 경기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편성 시기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늦어도 내달까지 추경이 편성돼 예산이 서둘러 투입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당정간담회에서 "만약 국회에서 빨리 정리되지 않고 8월 1일을 넘어간다든지 하면, 본예산보다 3~4개월 빨라지므로 추경 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