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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심장 없이 555일이나 산 사나이

박병일 기자

입력 : 2016.06.15 10:30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이해합니다. 저도 사실 CNN에 나온 이 기사의 제목 'Man lives 555 days without a heart '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그랬으니까요. 미국 미시간주의 한 공원에서 등에 회색 '백팩'을 멘 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 25살 라킨은 '심장'이 없습니다. 기사 제목대로 2014년 이후 555일을 심장 없이 산 이 사나이의 경이로운 사연을 지금부터 전해드릴까 합니다.라킨이 9살 되던 해였습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트 바닥에 털썩 쓰러져버렸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라킨은 '가족성 심근증'이라는 선천적인 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가족 병이었기에 남동생인 도미니크 역시 같은 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심장의 심실에 연결된 근육이 제대로 이완 수축 작용을 하지 못해 심장 밖으로 피를 원활하게 내보내지 못하는 '부정맥 유발성 심실형성 이상' (arrhythmogenic dysplasia)이라는 심장병입니다. 언제 갑자기 심장이 멈춰설지 모르는 무서운 병인데 두 형제는 실제로 심장이 멈추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했고, 2014년 인공 심장에 의존해 연명했습니다. 다행히 동생 도미니크는 6개월만에 조직이 같은 기증 심장을 구해 심장을 이식하고 퇴원했지만 형 라킨은 그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혈액을 공급해주는 인공 심장 펌프에 의존하며 병실에 누워있던 라킨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은 인공 심장을 달면 병실 밖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제 몸 안에 심장이 없는 데도 계속 일상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충격적이었죠." 앞서 설명 드렸지만 라킨이 등에 메고 있던 회색 백팩이 이를 가능케 한 비밀입니다.6kg짜리 이 기계는 인공 심장에 전력뿐 아니라 압축 공기를 공급해줘서 심장이 없어도 몸 전체에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게 해줍니다. "라킨은 매우 활동적일 뿐 아니라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섬세한 성격을 가진 사내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죠." 담당 의사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라킨은 이 백팩만 있으면 혼자서 운전이나 산책은 물론 가벼운 농구 경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장과 똑같아요. 튜브가 연결된 작은 가방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하는 기능은 그 이상이죠. 제 실제 심장과 별 다를 게 없거든요. 그냥 가방 하나 메고 학교 가는 기분 같아요." 라킨의 말입니다.라킨은 인공 심장을 달고 가장 오래 산 첫 번째 사례는 아니지만 미시간에서는 이동용 장비를 메고 평상 생활을 한 첫 사례라고 합니다. 라킨은 이 장비 덕분에 555일을 심장 없이 살아왔고, 지난 5월 심장 기증자를 찾아 인공 심장이 아닌 인간의 심장을 이식했습니다.

'미국 조직 이식 네트워크'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심장 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심장병 환자만도 4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라킨의 사례는 2001년 인공 심장이 개발된 이래 인공 심장이 얼마나 많이 발전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200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인공 심장 이식 수술을 담당했던 루이빌 대학 심장 전문의 라만 그레이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과학의 진보는 놀랍습니다. 인공 심장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죠.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고, 이제는 심장병 환자들이 자기 심장이 없이 완전히 인공 심장 만으로도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으니까요." 이런 비약적인 발전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많은 심장병 환자들에게 고루 혜택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CNN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