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 속에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다 구멍이네
구멍에서 태어난 물들
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은 지은 놈 하나 없네
<함민복, '뻘밭'>
질척한 갯벌은 특이한 생태 공간이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밀물과 썰물이 하루에 두 차례씩 때 맞춰 드나들며, 특유의 경관과 함께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터전을 이룬다.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고 부드러운 까닭이다.
시인이 본 대로 수많은 생명체가 깃든 구멍마다 바닷물이 드나들며 산소를 공급하는 덕분에 갯벌은 썩지 않고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정화한다. 갯벌의 가치를 돈으로 바꿔 표현하면 1㎢에 63억원이라고 2013년에 서울과학기술대학이 계산했다.
자체 보존가치만으로도 20.3억원에다 수산물 생산 기능(17.5억원), 생물서식처 제공 기능(13.5억원), 수질정화(6.6억원), 재해 방지(5.1억원)의 기능을 가진다. 우리나라 전체 갯벌로 그 가치를 환산하면 연간 16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고 해양수산부는 말한다.

소중한 갯벌을 우리는 무시하고 홀대하며 메우고 없애기를 되풀이해왔다. '연안습지'라고도 부르는 갯벌은 2013년 기준으로 2,487㎢다. 1987년 3,203 ㎢였지만 26년 동안 716㎢가 줄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구실로 쌓은 33km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2006년에 마감한 것이 한 예다.
중요한 갯벌 300㎢가 사라졌고, 이 때문에 붉은어깨도요의 개체 수도 20% 줄었다는 게 국제 야생조류 전문가, 생태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갯벌의 수질정화 기능으로 볼 때도 하수처리장 140개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수부는 설명한다. 이명박 정부 때 국토해양부로 통합됐던 해양수산부가 현 정부에서 부활해 해양 생태 보전 정책에 다시 힘을 쏟고 있어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우리 갯벌에 또다른 위기가 닥쳤다. '갯끈풀'이라는 외래종 식물이 소리없이 들어와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과 뿌리줄기 양쪽으로 다 번식하면서 갯벌을 금세 뒤덮어 흡사 초원처럼 바꿔놓는다.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유럽의 대서양 연안에서 자라던 갯끈풀(학명 Spartina alterniflora)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생태 환경을 망가뜨리는 유해 외래식물로 주목받고 있다. '갯끈풀'이라는 이름은 영어명 Cordgrass(끈풀)를 참고해 물, 바다, 바닷가를 뜻하는 '갯'을 붙여 국내 학자들이 붙였다.
양궁의 과녁판을 Big Cordgrass라는 풀로 만든다고 한다. 섬유질이 질겨서 화살이 날아가 박힐 때 화살촉을 망가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끈풀'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와 갯벌 습지에서 자라는 갯끈풀은 얼핏 보면 갈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태는 전혀 다르다. 별 관심을 받지 않던 이 풀이 지난 2012년에 강화도 남단 갯벌에서 확인됐다.
환경부가 2013년에 일단 '위해 우려종'으로 지정한 뒤 국립생태원과 해양수산부-해양환경관리공단이 각각 국내 번식 상황과 방제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하대 해양학과 홍재상 교수는 2015년 10월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결과 강화도 남단 동막리와 분오리 갯벌에서 12,150 ㎡, 전남 진도 석성 갯벌 7,179㎡ 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과거 구글 위성 사진과 비교 분석해서 진도에서는 2005년, 강화 남단에서는 2006년에 갯끈풀이 침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강화도 남단 동막 해안의 펜션 대표 이수한 씨는 지난 2008년에 펜션을 지을 때 제방 아래에 지름 0.5~1m쯤의 풀더미가 몇 개 보이더니 5,6년쯤 지나면서 펜션 앞 갯벌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번졌다고 말한다. 무성한 잡초밭처럼 바뀐 갯벌에 게, 조개류도 눈에 띄게 줄어 갯벌체험도 못할 지경이라며 이 대표는 한숨을 쉰다.

갯끈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연구 열기는 상당하다. 영국에서는 1870년 이전에 미국 동부 해안지역의 갯끈풀(Spartina alterniflora)이 사우스햄프턴 해역으로 들어왔고, 1913년에 히스 근처 갯벌에서 퍼진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영국 정부의 통합자연보전위원회(JNCC)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다. 이 식물종이 영국의 다른 끈풀과 교잡해서 지금의 번식력 강한 '영국갯끈풀(Spartina anglica)'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풀의 특성을 이용해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 지역의 뱃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갯벌에 심었다. 풀이 워낙 밀집해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뿌리줄기가 뒤얽혀 토양을 잡아주기 때문에 해안선 침식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다. 이른바 '생태공학'의 미명 아래 갯벌을 육지로 바꿔 해안지대를 개발하는 간척사업에도 이용했다. 섬유소가 풍부해서 가축 사료 용도로 재배해 쓰기도 했다.
이렇게 갯끈풀은 영국,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중국은 1963년부터 황해 연안 전 지역에 걸쳐 이 풀을 퍼뜨려 확산 면적이 4,000 ㎢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가 2013년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됐다고 홍 교수는 전했다.
갯끈풀은 갯벌 생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빠르게 번식 확산하는 까닭에 일단 갯벌에 들어오면 갈대나 갯잔디, 칠면초와 같은 다른 갯벌 식물종을 밀어낸다. 밀물에 실려 들어온 미세한 토사, 펄 물질이 빽빽한 갯끈풀 군락 틈새에 갇혀 점점 높이 쌓이게 되면 질척한 갯벌은 갈수록 굳어져서 결국 육상으로 바뀌고 만다. 갯벌에 살던 조류, 미생물, 조개류, 갯지렁이, 게 종류는 더 살지 못한다. 다양한 먹이사슬과 풍요한 생태계를 갯벌이 황폐해지면 어민은 갯벌에서 조개와 같은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게 된다. 어촌 경제가 피폐해지고 갯마을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갯벌의 40%를 어업으로 활용한다. 갯벌이 제 기능을 잃으면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해양수산부는 갯벌 복원을 확대하고 갯벌 생태관광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갯벌 어업을 확대하는 '갯벌 자원화 종합 방안'과 해양 생태계 보전을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해양보호구역관리 종합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갯끈풀은 걸림돌이 우리 해양 보전 정책에 걸림돌이다.

갯끈풀 확산은 이른바 지구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도 빨간불이다. 전 세계 철새 이동 경로 9개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간 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st Asia-Australia Flyway;EAAF)'라고 부른다. 남반구의 호주,뉴질랜드에서 우리나라 서해안과 중국 동부 연안을 거쳐 북극권을 오가는 5천만 마리 이상의 도요 물떼새에게 우리나라 갯벌은 영양을 보충하고 쉬어가는 중기착지로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스파이크 밀링턴 EAAF 사무국장은 강조한다.

해양수산부의 2015년 '연안습지 생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해안(경기,충남,전북, 전남) 갯벌에서 대형저서동물은 401종으로 나타났다. 조류도 다양해서 15개 지역에서 모두 49종 5만9천 마리를 확인했다. 이 가운데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넓적부리도요,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해 멸종위기종이거나 천연기념물인 법정 보호종이 8종이다. 갯끈풀이 갯벌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될 경우 철새들은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갯끈풀 확산을 심각하게 판단해 환경부는 오늘 ' 생태계 교란 생물종'으로 지정 고시했다. 해양수산부는 갯끈풀 확산을 막기 위해 방제 대책을 세워 조만간 실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중국 해안에서 씨앗이 조류를 타고 우리나라로 흘러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효과적인 방제 대책을 세우려면 정밀한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일일이 줄기와 뿌리를 손으로 제거하거나, 굴삭기로 파 내거나, 불로 태우거나, 퍼지기 시작할 때 검은 덮개를 씌워 햇빛을 가리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등의 방법을 써오고 있으나 완치하지는 못했다. 자칫 갯벌 생태계를 망가뜨리거나 씨앗을 더 널리 퍼뜨릴 수 있다는 점도 염려스럽다. 전국적으로 갯끈풀이 어디에 얼마나 침입했는지 시급히 정밀 조사하고, 확산 정도를 살펴 적절한 방제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홍재상 교수는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부처간 협업 체제를 갖춰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갯끈풀에 우리 갯벌 숨길이 막히지 않도록 정부, 지자체, 학계, 온 국민의 관심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