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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절친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대와 친해지려 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겠죠. 미국을 바라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심정이 딱 그렇습니다.
미국이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 핵협상 타결을 주도하면서 관계 개선에 나서는가 하면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핵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감싸줬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로서는 이런 친구가 당연히 밉지만 그렇다고 등지고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이번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속내는 참 복잡했을 겁니다. 정규진 특파원의 취재파일입니다.
요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역대 최악의 수준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군사적 지원과 안정적인 기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과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맹방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도 말입니다.
둘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계기는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으로, 당시 사우디가 반대하는데도 미국은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또 시리아 내전에서도 미국은 화학무기까지 쓰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시아파 알 아사드 정권을 모른척했습니다. 미국이 중동의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넘기자 사우디 입장에서는 과연 자신들에게도 위기가 닥치면 약속대로 지켜주기나 할지 의심이 들었을 겁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핵 위협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이란의 족쇄까지 풀어줬으니, 사우디는 중동에서의 영향력까지 위협받게 된 겁니다.
이에 더해 미국에서는 사우디 정부가 911테러범을 지원했다는 의회 보고서의 공개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하원이 911테러에 대한 피해 배상을 테러범의 출신 국가에도 물리는 법안을 준비하질 않나, 오바마 대통령이 '짜증 난다'고까지 표현하며 사우디가 중동의 대테러전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대놓고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지금 사우디가 안 그래도 재정적으로도 엉망이라는 사실입니다. 새로 취임한 국왕이 수니파의 힘을 키우겠다며 전 국왕의 온건 노선을 탈피하고 중동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군사개입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경 노선을 택한 탓에 예멘 내전에 돈을 쏟아 붓고 시리아 사태에까지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멘에서는 반군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고, 오히려 알 카에다나 IS 같은 테러조직이 자랄 토양만 마련해줬다는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덩달아 사우디를 도왔던 걸프 왕정 국가들마저 얻은 것도 없이 힘만 낭비한 꼴이 돼 수니파의 사슬을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셰일가스와 전쟁을 선포하며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강수도 뒀는데, 유가를 곤두박질치게 자초했고 이렇게 오일머니가 약해지다 보니 수니파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도 좁아졌습니다.
결국, 이란을 견제해야 한다는 종교적 정치적 논리에 사로잡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역효과만 낳은 악수를 범한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렵게 됐다 보니 사우디는 오바마의 방문이 달가웠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우정보다는 실리 차원에서 사우디 왕실로서는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를 반대 세력의 위협에 대비해 미국이라는 커다란 우산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어차피 오바마는 임기가 얼마 안 남았죠. 누가 그의 뒤를 잇든지 간에 오바마처럼 미운 짓을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 사우디는 아마 마음속으로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여러 번 되새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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