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아니었다.
지각을 흔드는 차륜소리
피를 보려고 조준한 총구
분명 시가지에 검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 피 묻은 아우성
청년은 팔이 꺾였다 다리가 부러졌다
모세관에 죽음의 못이 박히고
질주하는 <엠브란스>마다 찢긴 옷자락이 실려가고 있었다……
- 김기현, <혁명속에서> 中
56년 전 오늘, 그날을 목격했던 한 시인의 아픔은 구체적이었고, 선명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中
아픔이 컸던 만큼 시인들의 목소리엔 자유와 희망을 향한 의지도 강했다. 1960년. 일제강점기도 끝났고 한국전쟁도 끝났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부정선거와 탄압 등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된 시대를 살아가야 했다.
'피의 화요일, 1960년 4월 19일' 56년 전 오늘, 꾹꾹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열망이 거대한 분노가 돼 터져 나왔다. 한 달 전부터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고, 그날은 10만 명 이상의 학생들과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은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서울에서만 104명 죽었고, 광주와 부산의 고등학생 19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수백 명에 달했다. 이때 울려퍼진 11세 소녀의 시...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강명희,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中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교수단을 필두로 시위 참가자는 5만 명으로 늘었고 4.19 이후 일주일 만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시민들이 직접 권리를 찾아 나섰던 대규모 시위. 총탄과 군홧발을 뚫고 시민의 힘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해냈기에 이 날을 우리는 ‘4.19 혁명’이라고 부른다.
/기획 권영인 /구성 이은재 /그래픽 박영미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