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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원폭피해 부각' vs 美 '사죄하러 간 것 아니다'…시각차

입력 : 2016.04.11 17:30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현직 각료로는 처음으로 원폭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시를 방문한 것을 두고 미국과 일본의 시각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원폭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이 비극이라는 점에는 양측이 공감하고 있으나 원폭 투하 결정이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비롯한 역사 인식에는 아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케리 국무장관을 비롯해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이 11일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것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의미 있는 걸음이라는 자국 정부 안팎의 평가를 전했다.

이들 언론은 그러면서 원폭으로 피폭자를 비롯한 일본 사회가 겪은 고통을 국제 사회가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을 내쳤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장을 지낸 피폭자 다카하시 아키히로(高橋昭博, 2011년 별세) 씨가 케리 국무장관에게 히로시마 방문이나 핵 폐기 염원을 담은 편지를 적어도 6차례 발송했다는 사연을 소개하며 미국 정부 고관이 피폭의 실상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피폭자의 심경을 전했다.

10일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5개국 외교장관 부인이 평화기념자료관을 방문하고 나서 피폭자를 비공개로 만나 경험담을 경청했다.

피폭자들은 11일 각국 외교장관과 직접 대화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부인들을 통해 피폭의 참상이 전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평화기념공원 방문이 각국 외교장관에게 매우 큰 임팩트가 있었다고 느끼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일본인이 원폭으로 겪은 고통을 국제사회에 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등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일본에는 원폭 피해를 강조하는 흐름 속에서 원폭 투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피폭자인 미마키 도시유키(箕牧智之, 74) 씨는 "케리 장관은 핵의 무서움을 실감했을까"라며 그가 미국에 돌아가서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여론을 바로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원폭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비극적인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대량 파괴 무기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면서도 이번 방문이 과거 원폭 투하 결정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케리 장관을 수행해 일본을 방문한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케리 장관이 (과거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히로시마에 온 것이냐고 여러분이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다'"라고 워싱턴포스트(WP)의 취재진에게 말했다.

케리 장관은 11일 기시다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과거를 다시 논의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예우하지만,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발언은 원폭 투하가 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고 미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그간 미국 정부의 인식에 큰 변화가 없음을 시사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원폭 투하 결정이 정당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직접 거론을 삼가되 원폭의 비참함을 강조해 결과적으로 일본 역시 전쟁 피해자였다는 인상을 심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폭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는 별로 주목하지 않고 원폭이 낳은 결과만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작년에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이 타국을 식민지 지배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전쟁의 비참함만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아베 정권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법을 제·개정한 것에 이어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 개정까지 내다보면서도 유독 핵무기에 관해서는 평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검토한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나오면서 일본 내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첫 피폭지 방문이 성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