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경제

[취재파일] 안하무인 재벌 3·4세 갑질, 비난만 해선 계속 반복된다

정호선 기자

입력 : 2016.04.10 10:26|수정 : 2016.04.10 19:58


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 BNG 스틸 사장이 운전기사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운전기사들의 증언으로 드러났습니다. A4용지 140장에 달하는 수행기사 매뉴얼이라는 걸 만들어서 지키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매뉴얼이라고 하는 내용도 기가 찹니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가 출발 30분 전부터 대기하고, 사모님 취침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신호나 차선을 무시하고, 빨리 가라면 가라는 내용 등입니다. 현대판 노비문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굴욕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도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비상식적인 걸로 하자면 정일선 사장과 이해욱 부회장, '난형난제'입니다. 이해욱 부회장의 운전기사에 따르면 뒷좌석에 앉은 이 부회장이 운전하고 있는 자신을 향해 물병을 집어 던지거나 운전석을 발로 차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미동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출발과 정지를 강요했고, 그렇지 못하면 온갖 욕설이 쏟아졌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게 했다는 겁니다.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할 만큼 비상식적인 행동입니다.

● '금권'->'경영권'으로 쉽게 둔갑하게 하는 '편법 승계' 막아야

재벌 3세, 4세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대표적인 '금수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를 가지고 출발하는 거죠. 부모야 선택할 수 없으니 '부잣집'에 태어난 그 타고난 운을 뭐라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금전적인 수혜가 기업의 경영권이라는 특권으로 별다른 제약 없이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좌절도 겪고 쓴맛을 좀 봐야 겸손도 배우고 남을 위할 줄도 알 텐데 돈도 많은데다 회사 대표이사 자리에 쉽게 앉게 해주니 인성이 교정될 기회가 없는 겁니다. 기업의 대표 자리라는 것은 주주와 사원을 위해 명확한 판단력에 기반을 둔 경영 능력을 갖추고 조직을 아우를 균형잡힌 인성이 필요한 자립니다.

그런데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대표이사의 자리에 쉽게 오르면서, 가뜩이나 세상 아쉬울 게 없어 안하무인이 되기 쉬운 요건을 모두 갖춘 재벌 후계자들이 실제로 세상을 쉽게 보고 근로자들을 자기 소유물로 인식하는 행태를 보이는 겁니다.

금권이 경영권으로 둔갑하게 하는 여러 편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승계입니다.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보유한 우리나라 재벌의 특성상 그들끼리는 “일감 몰아주기를 안하면 바보”라고 말한다고 할 정도로 비일비재합니다.  이해욱 대림 부회장도 그렇게 경영권을 취득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습니다. 이 부회장은 10억 원을 투자해 대림H&L이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지분 100% 모두 이해욱 부회장 소유입니다. 이후 그룹 내 일감을 집중시켜 매출액은 급성장했고, 7년 만에 순자산이 330억 원의 회사로 키웁니다. 이 대림H&L을 대림코퍼레이션과 합병해 이 부회장은 0%였던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을 32.1%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H&L의 합병 비율은 1대 0.78이었는데, 이 때 대림코퍼레이션의 매출 규모가 대림H&L의 10배인 상황에서 1대 0.78의 합병 비율은 지배주주에 대한 특혜라는 논란이 제기 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에도 합병은 강행됐고 지분이 없던 이해욱 부회장은 합병 이후 아버지인 이준용 명예회장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랐습니다.

최근엔 이 부회장은 대림코퍼레이션에서 96억 원이라는 고액 배당을 받아 또 논란이 됐습니다. 이 법인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38억 원인데 184억 원의 배당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현금배당성향이 무려 480%나 되는 건데, 상장법인 평균치의 28배에 달하는 최고 높은 배당성향입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오너 일간 지분율이 99.8%에 달하는 사실상 오너 소유 기업(이해욱 부회장이 52.3%, 아버지 이준용 명예회장이 37.7% 지분을 보유)이라서 이런 높은 배당 성향이 다른 목적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너 일가의 사금고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윱니다.
 
현대BNG스틸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도 상당합니다. 현대차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가장 많이 받는 기업 중 하나죠.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블록딜'로 한꺼번에 매각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지분율 30%에서 10주가 모자라는 수준으로 내려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일은 유명합니다.

현대 BNG스틸은 2014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5,476억 원 가운데 2,439억 원을 내부 거래를 통해 벌어들였습니다. 내부 거래 비율이 무려 44.5%에 달합니다. 현대 BNG스틸은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현대차 기아차 현대그린파워 등 특수 관계자들이 당시 1,762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현대BNG스틸에 몰아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부 거래가 상당한 액수지만 공정거래법상으론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정일선 정문선 정대선 3형제가 주주로 올라있지만 지분율의 합이 규제 기준인 30% 미만이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은 그래서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지분매각이나 M&A를 통해서, 또는 분사를 통해서 총수 일가 직접 지분율을 조절할 수 있어서 사실 규제를 다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재벌에서 총수 일가 사익편취를 위한 내부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는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함으로써 재산권 보호와 건전한 주식회사 제도라는 현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익 편취는 또한 재벌 총수 일가의 세습에 악용되고 있으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절반을 편안하게 그룹 계열사에서 올리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매출을 더 올리기 위해 고객과 근로자를 배려하고 치열하게 고민할 유인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들은 늘 우리나라가 반기업정서가 심해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반기업정서를 만든 건 누구일까요.

그건 그렇고,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사과문에서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라고 밝혔는데요, 정 사장은 1970년생 46세입니다. 성숙해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에도 ‘젊은 혈기’를 잃지 않음을 부러워해야 할지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