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심장이 테러 공격을 받았는데 미국 대통령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회장에서 탱고를? 아르헨티나를 국빈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3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 대통령이 주최한 국빈 만찬장에서 여성 댄서와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탱고 음악에 맞춰 멋들어진 탱고 실력을 뽐낸 것까지는 좋았다.
예정된 것도 아니었고 사전에 연습도 없이 갑작스럽게 무대로 끌려나간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엔 손사래를 치다가 정작 무대에 나가선 여성 댄서를 리드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브뤼셀 테러가 발생한 직후 오바마의 탱고 외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국내로 들어와 외교 안보팀을 지휘해야 할 미국 대통령이 한가하게 탱고나 추고 있느냐는 트럼프와 공화당 측의 트윗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오바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오바마의 탱고 독트린'이라는 정치 분석기사에서 브뤼셀 테러 이후 오바마와 트럼프의 상반된 태도를 비교하며 이를 미국 내 상존하는 대외정책의 엇갈린 두 시각이라고 전했다.
당장 국경을 봉쇄해야 한다는 트럼프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손을 흔드는 오바마.
"이 비상시국에 야구 경기나 구경하고 있느냐. 즉각 워싱턴으로 돌아와 이 상황을 챙겨야 한다"는 트럼프의 트윗이 나오자마자 다음 행선지인 아르헨티나를 국빈방문해 연회장에서 탱고를 춘 오바마.
오바마가 상황 파악을 못 해 실수한 것 아니냐는 관측들도 있지만, 폴리티코는 두 사람의 상반된 입장은 단지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물론,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입을 모아 "오바마와 클린턴의 대외 정책은 일관성이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보면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테드 크루즈나 버니 샌더스와 맥을 같이 한다.
반면 오바마와 클린턴은 존 케이식과 비슷한 데가 있다.
통합적인 세계의 적극적인 일원으로서의 미국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미국의 안전과 국력을 위해 방어적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 간의 차이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오바마는 브뤼셀 테러 직후 "세계가 하나로 뭉쳐 무분별하고 사악한 테러 행위와 싸워야 한다"면서 자신의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IS(이슬람국가) 퇴치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브뤼셀 테러로 인해 대테러 전략을 변경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며 자신의 소프트 외교 노선을 변경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미국 내에서 그의 탱고 외교에 대해 사안의 심각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공포를 무시하는 게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인데 그들의 노림수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의 접근법은 다르다.
그는 자주 애용하는 트위터에 "나토는 이제 쓸모없게 됐다. 이제는 테러에 초점을 맞춰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나토의 비용을 불균등하게 감당해선 안 된다"며 미국의 예산이 다른 나라의 방위를 위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테러 혐의자들에 대한 물고문과 국경 봉쇄 언급이라는 단골 메뉴가 다시 등장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내 '성난 고립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은 "국경 통제를 포함한 불법 이민 문제는 미국내 테러 가능성과 밀접히 관련돼 있지만, 지금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고결한 자신들의 도덕성을 확신하면서 포괄적 이민 개혁으로 불리는 국경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트럼프의 부상이 이민 문제와 관련돼 있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찬장에서 탱고를 춘 것이 계획된 IS 무시 전략의 일환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적인 발언들도 단지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미국 유권자들이 오바마-클린턴의 통합적 세계를 위한 적극적 역할이냐, 미국의 이익을 위한 고립주의냐의 물음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올해 미국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