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입니다. 7,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계 무대를 누볐는데요, 이제 고희를 앞둔 그녀가 지난달 열린 평창 겨울 음악제에서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정통 클래식이 아닌 재즈 음악을 연주한 건데요, 치열한 젊은 시절을 지나온 거장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허설과 본 공연을 가까이서 지켜본 곽상은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정경화 씨는 몸에 달라붙는 타이트한 바지에 민소매 셔츠, 여기에 흰 색 남방을 걸친 차림으로 리허설 현장에 등장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과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 사이에 섰는데요,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자 협연자들과 눈을 맞추고 열정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흥을 폭발시켰습니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곡 <가을낙엽>과 바케니우스가 정경화 씨를 생각하며 작곡했다는 신곡 <그란디오소>를 연주했는데, 바케니우스의 기타 소리에는 판타스틱을 연발했고 나윤선 씨의 노래에는 반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는 등 연주 내내 활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정경화 씨가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웃고 떠들며 흥겨워하는 정경화 씨는 마치 장기자랑 무대를 앞둔 어린 소녀처럼 한껏 들떠 보였는데요, 그 에너지와 설렘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옛날에는 너무 기술적으로 아주 완벽하려고 너무 너무 발악을 했습니다. 꼭 올림픽에 나가서 몇 분에 몇 초 그걸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식으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았었는데 지금은요 무대에 나가면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정경화 씨는 이제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눈앞에 있는 기회는 우선 하고 봐야 한다는 배짱이 생겼다며 너무 재미있고 감사하단 점을 몇 번이고 반복해 강조했습니다.
물론, 조금 틀려도 웃고 넘길 수 있는 행사의 특성상 부담이 덜했던 거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스스로 이런 자유를 느끼고 또 관객들에게도 자유로움을 전달하기 위해 준비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편안함과 행복감은 준비된 자만 느낄 수 있는 자신감이자 동시에 무거운 왕관을 벗고 맨발로 시원한 바람 속을 걷게 된 노 연주자의 홀가분함이었던 겁니다.
등산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도 누구보다 열심히 산을 올랐던 사람이 가장 큰 해방감을 느끼죠. 여러분도 일단 열심히 오르다 보면 언젠가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재즈를 신나게 연주하며 산을 내려오는 날이 올 겁니다.
▶ [취재파일] '바이올린 여제'의 즐거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