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문제로 가족끼리 다투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보기 흔한 장면이 됐다.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다가도 어느 순간 ‘오죽 했으면…’하고 남의 사정을 인정한다. 개인에게만 모든 화살을 돌리기엔, 그들을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우리네 ‘세상살이’가 절대 녹록치 않음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싸움의 원인이 되는 ‘돈’을 ‘독립유공자 보상금’으로, 갈등을 빚는 ‘가족’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그 범위를 좁힌다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져야 할까. 지난 3.1절 기자는 <영화 '암살' 실제 모델 김상옥 의사 생가, 헐릴 위기> 기사를 통해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보상금 지급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로 인해 후손들이 보상금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 3월 1일 기사, 영화 '암살' 실제 모델 김상옥 의사 생가, 헐릴 위기
취재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 상당수는 “독립 유공자 후손이면 꼭 보상금을 받아야 하나. 그 돈 없이 열심히 사는 후손들도 많다”, “그 많은 후손들에게 전부 보상금을 줘야 한다는 것인가.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공은 선대(先代)가 세웠는데 왜 후손들이 그 보상을 두고 설왕설래 하느냐는 얘기였다.
●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보상금'은 돈 이상의 의미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보상금 없이도 자수성가한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 있고, 그 많은 후손들을 일일이 만족스럽게 챙기기엔 정부 예산이 한정돼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한 독립유공자 후손도 이같은 이유로 “자칫 이번 보도가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행여 누가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대의 ‘명예’와 비교해 “보상금이라는 돈 문제가 너무 천박한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며 노심초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를 한 이유는 해당 보상금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돈 이상의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취재 중 만난 한 후손은 “‘독립 유공자 보상금’은 가난해서 생기는 심리적 박탈감을 메우고 후손들이 선대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게 하는 유인이 된다”고 말했다.
후손들에겐 조국을 위해 몸바친 선대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한 ‘원망스러움’이 뒤섞여 있는데, 보상금은 이 ‘자랑스러움’의 크기가 원망스러움을 능가하게 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있는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고, 일제에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독립유공자들이기에 후손들 상당수가 지독한 가난을 되물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상금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가족의 노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설명이었다. 보상금이 후손들로 하여금 절대빈곤에는 이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 건 물론이다.
● 보상금 관련법 개정됐지만…"여전히 내 몫은 없어"
문제는 앞서 보도했듯 이 보상금이 독립 유공자 후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독립 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 '광복회'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는 독립 유공자의 후손 가운데 70% 이상이 손자녀 세대다. 독립유공자 1명당 평균 8명 정도인데, 현행 ‘독립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상 단 1명 만이 보상금 혜택을 받고 있다.

근거가 되는 독립 유공자법은 2015년 한 차례 개정된 바 있다. 2013년 헌법재판소가 보상금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해당 법률의 12조 2항과 4항 1호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었다. ‘손자녀 1명에 한정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손자녀가 2명 이상일 때는 나이가 가장 많은 자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인데, 2013년 개정법률은 ‘나이가 가장 많은 자에게 지급’ 부분에만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기존엔 보상금을 받을 수 없던 광복 이후 사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보상금 혜택을 받게 개정됐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손자녀 1명만 보상금 수급’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헌재는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보상금 총액을 일정액으로 제한하되, 적어도 같은 순위의 유족들에게 생활정도에 따라 보상금을 분할해서 지급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생활수준 등을 고려해 보상금 수급 순서를 정하도록 한 부분 마저 기준이 모호해 실효성이 적다는 게 후손들의 반응이다.
● 보상금 한푼 못 받은 후손도 800여 명…"실효성 있게 법 개정 해달라"
심지어 보상금을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한 후손들도 수백 명에 이른다. 광복회에 따르면 서훈을 받은 독립 유공자 6천831명의 후손 가운데 800명 이상의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 정부 수립 이후로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관련법상 배제돼 있는 ‘광복 전 사망한 유공자들의 증손자녀(자녀와 손자녀가 광복 전 모두 사망한 경우)’ 등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독립 유공자는 본인은 물론 자녀세대까지 사망한 경우가 많아 지원을 받아야 하는 후손 대부분 손자녀 이상인데, 보상금 수권 대상이 최초 수급자 한 세대에 그쳐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유공자들이 2세대에 걸쳐 보상금을 지급받고 있는데 독립유공자만 그렇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의 손녀조차 부모가 보상금을 수령해 경제적 지원 없이 어렵게 살고 있다"며, "2대까지는 보상금을 지급해야 선대가 모든 재산을 나라에 바쳐 어렵게 살아온 후손들의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광복회는 독립 유공자 후손 모두가 '적은 액수라도 골고루' 보상금 혜택을 받는 방향의 법 개정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대신 보상금을 ‘독립 유공자 1명당 2세대에게 지급’ 하도록 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이마저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지금까지 ‘독립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 수십여 건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