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일제에 머리를 굽히기 싫어서 평생 고개를 숙이지 않고 뻣뻣하게 고개를 든 채로 세수를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입니다.
그는 무서울 만큼 냉정하면서도 동시에 열정적인 성품으로 모든 말과 행동이 이처럼 조국의 독립으로 귀결됐는데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정작 신채호 선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그의 숨겨진 자취를 찾아 중국을 다녀온 최효안 기자가 그의 일생을 취재파일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가 아닌 대륙 중심으로 확장시킨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이자 식민 치하의 대중들을 일깨운 언론인이었고 문필가이자 사상가였으며 무엇보다 신민회와 광복회 등 비밀 결사단체를 이끌면서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순국열사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반일 세력이 많아 조건이 좋은 상하이에서 활동한 것과 달리 친일 세력이 판을 치는 위험한 베이징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항일 투쟁을 벌였는데요, 이렇게 중국의 심장부에서 독립운동에 여념이 없던 신채호가 1917년 일제에 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몰래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친형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딸이 친일파와 결혼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분해서 달려왔던 겁니다.
그는 조카가 결혼을 강행하겠다고 하자, 이제부터 자신은 삼촌이 아니고 골육이라도 끊어버릴 수 있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또 일평생 가난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독립운동에만 매진하다가 7년간의 모진 옥살이로 몸이 더 쇠약해져 1936년 강추위가 불어닥친 어느 날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요, 죽기 직전 감옥 측이 병보석을 허가했지만, 선생이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당시 재력이 있는 사람은 친일파밖에 없었으니, 친지와 동료들이 어렵게 구한 보증인도 친일파였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친일파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며 결국, 죽음을 택했던 겁니다. 그는 그렇게 임종을 지키는 가족도 없이 차디찬 감옥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최옥산/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 교수 (신채호 연구학자) :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해서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거잖아요. 단재같은 분이, 그런 위대한 분이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여기 현재를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주독립 국가 국민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 덕분인지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데요, 오늘 주어진 하루도 그분들에게는 꿈에서나 그리던 하루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취재파일] 베이징에서 만난 단재 신채호 선생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