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탄광으로 강제징용해 노역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맞아 죽거나 다쳐서 희생한 조선인 노동자를 '순난자'(殉難者), '순직자'(殉職者)라고 말하고 있어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순직인가요? 그게 이치에 맞는 말인가요?" 한일문화연구소장인 김문길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가 목소리를 높이며 일본을 성토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열리는 '다케시마의 날' 관련 항의 행사에 참석하는 그는 "일본이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해 세운 비문(碑文)에 '순난', '순직'이란 단어는 모두 없애야 하며 '희생자'(犧牲者)라는 용어로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순난'은 '국가, 사회, 종교상의 위기나 난리를 당하여 의로이 죽음'이라는 뜻이고, '순직' 역시 '맡은 바 일을 하다가 안타깝게 희생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고로 죽거나, 구타·감금 등으로 희생한 이들이 일본 국가를 위해 의로운 죽음을 맞았다니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인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다가 희생한 것입니다. 순난, 순직을 했다면 유해를 발굴하고 안장해 추모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이런 왜곡된 역사를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먼저 비문을 고치고, 조선인 유해를 본국으로 모셔와야 합니다. 일본인들의 공양(供養)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유골들의 발굴도 조속히 이뤄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뿌리부터 역사 왜곡을 하는 일본의 행태를 바꾸지 않고는 '다케시마의 날'과 같은 억지 행사는 계속될 것"이라며 분개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탄광 집중촌인 다가와(田川)시에는 '조선인탄갱순난자지묘'(朝鮮人炭坑殉難者之墓).
'다가와지구재일조선인순난자영위', '다가와지구탄광순직자위령의비' 등으로 표기한 비문이 50여 개 세워져 있으며 홋카이도(北海道)와 오키나와(沖繩) 등지를 포함하면 200개가 넘습니다.
이 숫자는 김 교수가 직접 방문해 확인하거나 문헌을 조사해 집계한 것입니다.
돌이나 철 등에 새겨 세운 비석과 정토사(淨土寺)·법광사(法光寺) 등 절에 모신 위패 등은 탄광업자나 일본인이 세운 것입니다.
'조선인탄갱순난자지묘'는 다가와시 법광사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유해를 묻고 세운 비석이고, '다가와지구재일조선인순난자영위'는 같은 시 정토사에 모셔진 위패입니다.
이들 절의 주지는 매일 공양법회를 올리며 일본을 위해 순직한 조선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습니다.
"강제 노역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다가 잡혀 맞아 죽으면 시체를 화장하고 절에 위패를 모셨다고 합니다. 그 희생자들을 기록한 명부, 즉 '과거장'(過去帳) 표지에도 '일제시대조선인노동자순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우키시마(浮島)호 폭침으로 목숨을 빼앗긴 조선인 노동자들의 추모비에도 '순난'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1945년 8월 24일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를 태우고 아오모리(靑森)현에서 출항해 한국으로 가던 군함이 마이즈루(舞鶴) 앞바다에서 폭발해 침몰한 일입니다.
이때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 등 549명이 사망했다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습니다.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端島·군함도)탄광을 비롯해 다가와 탄광 지역 등을 수시로 찾아가 항의하며 비문에서 '순난', '순직'이란 말을 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해 쓴 용어다', '일본에 있는 한 그렇게밖에 쓸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만약 유족회 등이 나서서 훼손한다면 법적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더군요.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는 3월경 문화재환수국제연대(CAIRA)와 함께 다가와시를 방문해 비문을 고쳐 달라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지금으로써는 일본의 태도가 바뀔 것 같지 않지만 계속 공문을 보내고, 찾아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각오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가 일본 정부와 협상하고, 비문을 고치는 작업을 하면 얼마 되지 않는 예산으로도 충분히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