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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변기에요.저 요즘 좀 억울해요. 뭐 요즘도 아니죠. 한참 됐으니까 처음부터 얘기하려면 끝도 없는데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 요새 사람들이 저를 갖고 이것저것 실험을 많이 해요. 뭐 죄다 세균 실험이죠. 위생을 잘 따져야 하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저일까요? 잊힐만하면 또 나오고.. 이번엔 또 뭐더라. 화장품. 그것도 유통기한 지난 거…그걸 왜 또 나랑 비교하지… 나 참.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나... 내용은 안 봐도 뻔해요. 뭐 숫자만 달라질 뿐이고, 죄다 저보다 몇 배 더 더럽다, 저만큼 더럽다 얘기하시는데 제가 맨날 더러운 것도 아니고…ㅠㅠㅠ 저도 그날그날 다르다고요. 어떨 때는 덜 씻어서 세균이 조금 많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방금 막 씻어서 깨끗할 수도 있는데...사람들도 그러지 않나요? 그리고 이것도 좀 이상해요.
실험에 제가 계속 나오는데 수치가 다 달라요. 어떤 건 5.4마리, 어떤 건 93마리.. 똑같이 저한테서 채취했다는데 40배나 차이 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저보다 훨씬 더 더럽다고 실험하고 싶으면 제가 깨끗할 때 채취하면 되고 저보다 별로 차이가 안 난다고 말하고 싶으면 제가 아주 더러울 때 채취하면 된다는 말이랑 같잖아요 너무 억울해서 제가 직접 물어봤어요! 아니 팀장님 도대체 왜 이렇게 기준이 다른 거예요?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의료융합팀 박상욱 팀장
"의뢰자 쪽에서 보내는 비교 대상이 달라서 그래요. 보통 사람들이 변기를 제일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의뢰자들이 변기랑 비교를 하는데 사실 구체적인 채취 기준은 따로 없습니다."
아… 진짜 그랬군요. 실험을 맡기는 사람 마음대로였다니.
이제 곧 변기보다 더 더러운 숟가락, 젓가락이 나오겠네요.ㅠㅠ 흑흑 누가 좀 제 억울함을 풀어주실 수 없을까요? 여기저기 마구 불려 다니지 않게 저희를 비교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으로 하라고, 그렇지 못할 거면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고 말이에요.
* 이 기사는 변기의 시점에서 작성된 1인칭 기사입니다.
사실 요즘 변기가 등장하는 위생 관련 소식을 많이 접하긴 합니다. 저희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재했다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진짜 변기 세균을 비교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좀 필요해 보입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