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년여 전, 2006년 11월, 유럽을 경악시킨 일이 일어납니다. 전 KGB 요원이었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영국 런던에서 암살됩니다. 11월 1일 런던의 한 호텔에서 러시아 FSB 요원들과 접촉한 그는 차를 마시고 쓰러진 뒤 입원했지만 11월 23일 숨집니다. 리트비넨코가 마신 차에서는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 210이 검출됐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탈모 된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당시 영국 경찰은 리트비넨코와 접촉했던 FSB 요원 2명을 용의자로 보고 이들을 수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러시아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안드레이 루고보이와 드미트리 코부툰, 두 용의자에 대해 영국 경찰은 러시아에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외교관이 추방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두 나라 관계가 완전히 회복됐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BBC에 따르면 루고보이는 2007년 국가 두마 의원이 됐고, 지난해에는 푸틴 대통령에게서 ‘조국에 봉사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코부툰은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그는 사건 직전 친한 친구에게 ‘아주 값비싼 독극물’을 운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건 관련성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암살의 배후로 푸틴 대통령을 거론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푸틴 대통령이 거론되기는 했습니다. 리트비넨코가 숨지기 전 푸틴을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사안으로 취급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상 푸틴을 배후로 공식화했습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조사위원장인 로버트 오언 판사는 KGB의 후신인 러시아 FSB가 암살을 지시했다는 ‘강력한 가능성’이 있으며, 이 작전이 ‘아마도 푸틴의 승인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robable'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었다고 결론지은 것입니다.

푸틴 배후설은 왜 나왔을까요? 리트비넨코가 숨지기 한 달 전인 10월 7일 모스크바에서는 반 푸틴 언론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암살됐습니다. 이 사건도 푸틴 정권의 행위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리트비넨코나 폴리트코프스카야 모두 푸틴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체첸 사태와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꾸준히 체첸 사태를 파헤치면서 러시아 군에 의한 주민 학살이나 폭력 등 체첸 주민들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자주 썼습니다.
그녀는 푸틴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리트비넨코도 체첸 사태에 푸틴 당시 총리가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폴리트코프스카야 암살 사건을 조사하던 중 변을 당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두 용의자가 폴리트코프스카야 암살 사건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암살 도구도 한몫합니다. 이전에도 독극물에 의한 망명자 암살 사건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방사성 물질을 이용한 암살은 드뭅니다. 방사성 물질 자체가 개인이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해도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리트비넨코 암살에 사용된 폴로늄 210은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암살에도 사용됐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라파트가 암살됐는지 여부는 아직도 분명히 밝혀진 바 없습니다. 드물게 사용된 폴로늄 210을 이용한 암살이라는 점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물질을 사용하려면 막강한 비호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보고서가 발표된 뒤 카메룬 영국 총리는 국가 주도의 살해 사건이라는 보고서의 증거에 대해 “그야말로 끔찍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러시아 정부의 개입이 “국제법과 문명화된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에 대한 뻔뻔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침해”라고 비난했습니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런 식의 조사’가 앞으로 양국의 관계에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조사가 “우리에게는 판결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도 이 조사가 공식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았다면서 “처음부터 러시아와 러시아 관리들을 음해할 한 가지 목적만 있었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공방과는 상관없이 이번 조사 결과 발표가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적 암살은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 사건처럼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1978년 9월 런던에서 불가리아 출신 망명자 게오르기 마르코프의 암살사건이 일어납니다. 길을 가다가 행인의 우산에 찔렸는데 나흘 뒤 숨졌습니다. 당시 마르코프에게서 리신이라는 독극물이 검출됐습니다. 마르코프는 불가리아 공산당 간부의 부패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추방된 인물입니다.
영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방송을 통해 불가리아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습니다. 냉전 시대였던 터라 추측만 있었을 뿐 수사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2005년 불가리아 일간지가 불가리아 비밀경찰이 KGB에서 제공받은 독극물로 그를 암살했다고 보도합니다. 이렇게 범행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 못했을 동구권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은 뒤에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아마도 이번 리트비넨코 암살 사건 보고서는 이런 미스터리한 여러 사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사건의 배후가 드러난 경우가 아닐까 봅니다. 이 사건도 처음부터 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건 초기 러시아와 외교 마찰까지 겪으면서 영국이 수사에 주춤한 모습을 보이다 발생 8년이 지난 2014년에야 리트비넨코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물론 러시아 쪽 인사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했지만, 일부라도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도 다른 외교 사안들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 정부는 런던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할 것이고, 러시아는 강력히 부인할 것입니다. 더구나 푸틴 대통령까지 거론한 데 대해 러시아의 반응은 상당히 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유럽과 러시아가 아직도 냉랭한 관계인데, 이번 발표로 양측이 더 멀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IS 격퇴전에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속이 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외교적 상황과 상관없이 사건의 ‘진상’을 발표한 오언 위원회는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정치적인’ 고려, ‘외교적인’ 고려 속에서 ‘진실’이 묻히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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