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틈으로 몰아쳐 오는
산 너머 언덕 너머 물결쳐 오는
소름끼치는 군화발 소리,
작은 꽃밭도 진달래꽃도 짓이겨져서
흙 속에서 짓이겨져서
온 날을 죽어가며 꿈틀거리고는
논바닥에 엎디어 숨어 살면서
죽창으로 서러움을 어루만지는,
우리들은 지금쯤 어디에 와서
어디로 죽은 듯이 쫓겨가는가
고부 땅 어느 곳을 후비어 파고
죽은 아비들을 만나 볼거나
황룡강 강바닥에 자맥질해서
죽는 형님들을 만나 볼거나
새벽이면 지금도 총을 겨누며
한강을 뛰어넘는 군화발 소리,
잔인하게 쏘아대는 총소리에 떨며
우리들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 양성우, <노예수첩> 중 일부 -
징역 3년이었다. 1975년에 이런 시를 쓰고, 1976년에 주변에 알리고, 1977년에 잡지에 실리도록 한 대가였다. 대한민국이 독재국가로 국민들이 최소한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 채 억압당하고 있고, 정부가 비밀 흥정에 의해 몇 푼의 대가를 받고 군인들을 월남으로 보냈다고 묘사해 국가기관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또 이를 알려 대한민국의 안전과 이익, 위신을 해했다는 이유로 그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무죄였다. 다시 열린 재판에서 그는 죄를 벗었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재판장의 선고가 끝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재판장에게 천천히 목례를 했다. 변호인과 함께 법정을 걸어 나오던 그는, 이미 다른 서류를 보고 있던 재판장을 향해 잠시 뒤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천천히 목례를 했다. 36년 만에 ‘국가모독죄’를 벗은 그는 담담했다. ● 국가를 모독한 죄?… 대통령 비판을 막기 위한 법
구 형법 제104조의 2. 지금은 사라진 이 법은 ‘국가를 모독한’ 사람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유신 시대 이 법이 규정한 ‘국가에 대한 모독’은, ‘대한민국과 헌법상의 국가기관에 대하여 비방, 모욕하거나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고질적인 사대풍조를 뿌리 뽑기 위한 법이라고 그 도입 배경을 밝혔지만, 현실에서 이는 외국 매체를 이용한 대통령 비판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시인이자 전 국회의원인 양성우 씨에게도 이 혐의가 적용됐다. 1971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당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겨울공화국’이라는 시를 낭독해 학교에서 파면을 당했다.
4년 뒤 그는 <노예수첩>이라는 장편 시를 썼다. 그리고 이 시를 발표해달라며 외국인들에게 전달했다. 1977년, <노예수첩>은 일본 잡지에 실렸다. 그리고 그는 재판에 넘겨졌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와 국가모독죄가, 공소장에 적힌 그의 죄명이었다.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듬해,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10년 뒤 이 ‘국가모독죄’ 조항은 우리 형법에서 사라진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1988년 4월 총선으로 13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되면서 발족된 ‘민주발전을 위한 법률개폐특별위원회’가 이 국가모독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을 제출했다.
유신 시절 국내 언론이 통제되고 있던 상황에서, 이 조항이 외국 언론이나 외국 단체 또는 외국인과의 접촉을 억제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억압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국민의 건전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민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에서, 이 조항은 삭제됐다.
● 국가모독죄 위헌의 근거…"국민은 국가를 비판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모독 조항은 사라졌지만, 이 조항에 근거한 ‘죄인’은 그대로였다. 그는 재심을 신청했다. 법원은 다시 재판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미 사라진 구 형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했다. 그를 유죄로 판단한 국가모독죄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 10월, 헌법재판소는 국가모독죄가 폐지된 지 27년 만에 이를 규정했던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민들은 자유롭게 국가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사회를 이루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자유롭게 국가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국가에 대한 평가는 사회 공동체의 사회 공동체 스스로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국민과 분리된 국가를 전제로 국민들의 비판이나 부정적 판단에 대해 국가의 ‘위신’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 헌법재판소 2015년 10월 21일 결정문 -
이 결정에 근거해 과거 국가모독죄로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재판이 시작된 상태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던 그도 역시 이 결정에 따라 재판을 이어가게 됐다. 그리고 어제 재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형벌에 관한 법령이 이미 폐지됐다 해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반돼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는 '범죄가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피고인 양성우’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장은 앞으로 재판을 하며 이번 판결이, 법령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그 법령이 헌법 정신에 부합되는지를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선고를 받고 나온 그는 담담하게 이제까지의 재판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 해당 영상 보러 가기 “오래 전 군사 정권 아래서의 투쟁이 그 때 당시에는 법적으로 여러 가지로 문제시됐지만 지금은 그것이 국민의 기본적인 권한, 다시 말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부당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정치적인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됐지 않습니까?”
“역사는 언제나 옳은 쪽으로 가기 때문에 나는 이 재판이 무죄가 떨어지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고생이라기보다는 내가 앞장서서 이 재판을 무죄로 이끌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재판 과정이,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 오늘도 ‘판사님’을 찾는 사람들
그렇게 1988년 국가모독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이미 사라진 국가모독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 지난해에 나왔다. 어제는 과거의 법 조항에 따라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에게 다시 무죄가 선고됐다. ‘국민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국가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이렇게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판사님’을 자주 찾는다.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판사님 저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판사님 이 글은 우리 집 고양이가 타이핑했습니다’까지. 처음 이런 댓글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표현이 시간이 갈수록 다양하게 변화 혹은 진화해 나가고 있다는 것엔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터다.
사람들이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글에서 이런 댓글들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실제로 그런 글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판사님’ 댓글에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 그 이상의 것을 읽는다. ‘이 글을 나는 읽었다’, 나아가 ‘이 글이 재미있다’, 또 ‘이 글에 동의한다’는 함의가 바로 그것이다.
농담처럼 하나 둘 씩 달리던 이런 ‘판사님’ 댓글은 이제 정부 혹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글에서도 흔히, 혹은 더 자주 보인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에도 오프라인 못지않게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인식 확산의 발로라면 일면 이 ‘판사님’ 댓글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혹여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서 비롯된 자기 검열에 어느 새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미 너무나 당연하게도 재확인되고 있는, ‘국민들은 자유롭게 국가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사람들이 점차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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