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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 불가"

조명아

입력 : 2016.01.08 18:05|수정 : 2016.01.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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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몸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하루 최고 100번의 중력 훈련도 거뜬히 견뎌냈던 파일럿 김도현 대위.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최고의 조종사'로 불렸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다쳤을 때 수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혈액형을 적어놔요" 이름표 옆에 혈액형을 항상 적을 정도로 위험과 함께하는 조종사 생활. 그만큼 안전이 중요하기에 김 대위는 곧 있을 에어쇼도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1300여 명의 관객과 함께 시작된 에어쇼. 조종사들의 화려한 실력에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김 대위도 최고난도 기술을 보이며 하늘을 누볐습니다.
갑자기 그 때, 하늘에서 요동치기 시작하는 김 대위의 전투기. 전투기는 곧바로 관객석을 피해 반대편 잔디밭에 추락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왼손으로 가감속 장치를, 오른손은 조종간 스틱을 잡은 상태였다" (공군). 충분히 전투기의 비상탈출용 시트를 이용해 탈출 가능했던 상황이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종간을 놓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이 있는 자리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김 대위. 그 날은 그에게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바로 네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에어쇼 준비로 잘 챙겨주지 못한 아내를 위해 기념일 깜짝 선물을 준비했던 김 대위는 끝내 그 선물을 전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긴 숭고한 희생. 남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조종사는 故 김 소령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991년 12월, 이상희 중위도 그랬습니다. 착륙 준비를 하던 중 이 중위의 전투기는 다른 교관의 전투기와 충돌하고 맙니다. 전투기가 급하강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 중위는 탈출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아, 전방에 민가가 보인다. 탈출 불가" 그가 조종하던 전투기는 이미 통제불능의 상태였고 전투기는 민가가 밀집한 광주광역시의 한 민간 마을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탈출 불가' 음성을 남긴 채 마을을 피해 밭으로 추락한 이상희 중위. 그는 필사의 노력으로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당기며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종사의 꿈을 키워오며 공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신성인 :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함.
그들이 떠난 지 10년, 25년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살린 용기와 숭고한 희생정신은 여전히 변함없이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故 김도현 소령와 故 이상희 대위는 순직 후 각각 1계급 특진 추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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