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이란 자살골 넣었나"…빌미 제공 사우디에 과격시위로 역공당해

입력 : 2016.01.05 12:01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인사 처형에 항의하며 사우디 공관을 습격·방화한 것이 이란의 '자살골'이 됐다고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분석했다.

양국간 갈등의 단초가 된 사우디의 집단처형과 관련해 이란이 주도권을 쥘 수 있었지만 과격 시위대가 자국 주재 사우디 공관을 잇따라 공격하면서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사우디가 지난 2일 자국 내 유명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해 테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형수 47명을 집단 처형한 사건은 '이란 시위 변수'가 없었다면 애초에 사우디에 비난이 집중됐을 일이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되는 전제국가인 사우디는 매년 세계 최다 수준의 사형 집행 건수를 기록해 국제사회에서 우려를 자아냈다.

특히 사형 집행 대부분이 공개 참수 형태로 이뤄지는 점은 주요 인권 단체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우디가 하루에 50명 가까이 집단 처형한 이번 사건도 당초 사우디의 인권 문제가 비판의 초점이 될 공산이 컸다.

사우디는 또 비폭력 투쟁을 주장해오던 시아파 지도자를 함께 처형했다는 점에서도 '소수파 탄압', '종파 갈등 조장'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그러나 이란의 과격 시위대가 자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습격해 화염병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공격함으로써 사태를 양국간의 외교 분쟁이자 지역 전체의 대립으로 변질시켰다.

이 때문에 이란 정부는 집단처형을 놓고 사우디를 공격할 명분을 잃었으며 사우디는 물론 바레인, 수단 등과도 외교관계가 끊기게 됐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이란 당국은 사우디 대사관에 침입해 불을 지른 혐의로 40명을 검거하고 하산 로하니 대통령까지 나서 "사우디 외교공관 공격은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등 시위대와 선을 그으려 애썼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란 시위대의 사우디 공관 습격은 특히 이란이 지난해 역사적 핵협상 타결 이후 국제사회의 '왕따'에서 믿을만한 동반자로 복귀해가는 과정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유엔과 주요국 정부는 사우디의 집단 처형 못지않게 이란의 사우디 공관 공격을 비판하는 데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NYT는 이와 관련 "사우디의 집단 처형을 외교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던 이란이 시위대의 과격행동으로 오히려 새로운 위기에 휘말리고 적대 세력에 의해 '선동적'이라는 이미지만 다시 덮어썼다"면서 이란이 사우디의 수에 놀아난 꼴이 됐다고 전했다.

이란 군중이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한 것은 그러나 민족주의자나 혁명세력이 최고 지도부의 용인 아래 자국 내 외교공관을 공격한 이전 사례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1979년 대학생 시위대가 주 테헤란 미국대사관을 444일간 점령하고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터져 미국과 국교가 끊어졌다.

당시 최고지도자로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미국 대사관을 "첩자의 소굴"이라고 규정하며 대사관 습격을 공공연하게 칭찬했다.

2011년에도 영국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동참하자 이에 항의하는 강경파 이란 대학생 시위대가 주이란 영국대사관과 관저를 점거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대사관이 폐쇄됐다가 핵협상이 타결된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재개됐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당시 학생들이 외국 공관을 공격하는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그러한 행동의 '정서'는 용인하는 반응을 보였다.

가디언과 NYT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강경파들은 외국공관 공격이라는 '익숙한 행동 수칙'을 꺼내 들었으나 이번에는 역풍을 맞게 됐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