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텍사스’ 하면 생각나는 게 있으신가요? 카우보이, 선인장, 그리고 추신수 선수 정도? 저 역시 그랬습니다. 이곳으로 연수를 오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텍사스에 또 하나 명물이 있으니 바로 지역 언론인 텍사스 트리뷴(Texas Tribune)입니다.
텍사스 트리뷴은 비영리 정책뉴스 미디어로 정치적 중립성을 추구합니다. 에드워드 R. 머로 상, 미국 탐사기자 및 편집인협회(IRE) 상 등을 수상한 경쟁력 있는 매체로 우리 나라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습니다. 지난2009년 출범 후 불과 6년 만에 이룬 성괍니다.
● 텍사스 트리뷴을 만나다
가을 학기가 끝나고 잠시 짬이 났습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지역 언론사 탐방에 나섰습니다. 24시간 뉴스 채널인 Time Warner Cable News를 다녀온 뒤 선택한 곳이 텍사스 트리뷴이었습니다. 제 연수 주제와도 무관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저널리즘’, 요즘 언론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늅니다. 텍사스 트리뷴이 지역 언론임에도 단 시간 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데이터를 활용한 정책 뉴스가 독자들에게 먹혔기 때문입니다. 그 현장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메일로 방문신청을 하자 이내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을 손님으로 맞을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it'd be our honor to have you as a guest.)” 좀 과하다 싶을 만큼의 환대였습니다. 다만 제가 관심을 나타낸 데이터 팀은 스케줄이 빡빡해 몇 차례 조정을 거친 뒤에야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방문한 뉴스룸은 과히 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위 잘나가는 IT 회사를 연상시킬 만큼 분위기는 자유롭고 활기찼습니다.
● 아이디어 찾기… ‘위아래’도 없다
존 조던 행정국장의 안내로 뉴스 앱 개발자인 애니 데니얼과 만났습니다. 제가 애초에 데이터 팀과의 인터뷰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팀은 모두 4명, 크지 않은 규모였습니다. 작은 규모의 데이터 뉴스를 제외하면, 1년에 평균 12개 정도의 뉴스 앱을 생산한다고 했습니다.
뉴스 앱 개발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묻자 일반적으로 하의상달(上意下達 / Bottom Up)식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기자가 일선에서 얻은 정보로 아이디어를 내거나 데이터 팀이 직접 기사 거리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이후 과정은 일선 기자와 데이터 팀의 협업으로 이뤄집니다. 기사 관리 책임이 있는 에디터는 제작 과정 후반부에 제한적으로 관여합니다. 일선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조치인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에디터나 최고 경영진이 뉴스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디어와 데이터가 있다면 누구나 앱 개발에 적극 나섭니다. 텍사스 트리뷴의 대표적인 상품인 ‘공무원 연봉 분석 데이터’는 창업자인 존 손턴이 처음 제안했습니다. 텍사스 내 모든 공무원들의 임금을 분석한 것으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 일선 기자도 ‘데이터 마인드’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항은 데이터 팀은 물론 일선 기자들까지도 출입처나 취재과정에서 얻는 데이터를 직접 정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조직이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일선 기자들이 수시로 데이터 팀을 찾아와 자신이 필요한 프로그램 조작법을 묻고 배우는 게 일상화 돼 있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데이터가 뉴스 소스로서 갖는 장단점을 잘 알 수밖에 없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방법도 그 만큼 더 잘 찾아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였습니다. 일선 기자 차원에서 어려운 것은 데이터 팀이, 데이터 팀에서 구할 수 없는 자료는 일선 기자가 찾고 구하는 일종의 투 트랙방식입니다.
▣ 정치적 중립…비정파 매체의 비결
길지 않은 시간을 쪼개 써야 했던 만큼 데이터 팀의 구성과 운영 방식, 이용 프로그램 같은 그야 말로 제가 궁금했던 실무적인 사항들부터 하나 하나 물었습니다. 소셜미디어 이용 같은 부분은 한국 언론사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데이터 팀의 구성과 활용은 다른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론사 규모를 포함해 환경적인 차이도 컸습니다.
데이터 팀의 실무적인 운영 노하우만큼이나 궁금했던 부분이 바로 이 매체의 특징인 비정파(Non-Partisan)성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분명한 매체 색을 보이는 언론사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비정파성, 정치적 중립성을 추구합니다. 특히나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문제는 언론사의 비정파성, 중립성 추구가 결코 언론사 자체의 노력에 비례해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 인터뷰에 응해준 애니(앞서 말씀드린대로 뉴스 앱 개발자입니다) 역시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보는’ 인간의 특성을 언급하며 같은 기사에도 서로 상반된 의견을 보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에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관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책 뉴스를 다루면서 텍사스 트리뷴은 어떻게 독자들로부터 비정파적 매체라는 평가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요? 질문은 거창했지만 답은 간단했습니다. ‘데이터가 말하게 하라’, 데이터 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봄직한 말이었습니다.
애니는 자신은 데이터를 다룰 뿐이라면서 데이터에는 정파성이라는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데이터를 토대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의 경우 단어 선택 등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자신의 영역에서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했습니다.
● 메시지 ‘전달’이 아닌 ‘탐색’
사실 텍사스 트리뷴이 단기간 내 정치적 중립성을 구축할 수 있는 배경에는 ‘비영리 매체’이라는 특성도 한몫 했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텍사스 트리뷴에 후원을 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습니다. 실제로 이 매체 수익의 상당 부분은 이런 후원금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공적 소유구조가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해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공영’매체가 중립성 시비에 휘말린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더 있을까요? (데이터 저널리즘의 기본적 요소이긴 하지만) 텍사스 트리뷴의 데이터 기사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이용자가 직접 탐색해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자신이 궁금한 사항을 찾고 확인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이용자가 약간의 IT 능력만 있다면 기초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원하는 작업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데이터라고 해도 어떤 부분을 취사선택해 기사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만큼 데이터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 비정파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론사가 데이터에서 찾아낸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 자신이 의심스럽거나 궁금한 대목은 그 원본 데이터를 가지고 스스로 탐색하고 확인해볼 수 있다면 그 만큼 시비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데이터 저널리즘을 활용한 보도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는 또 어떤 데이터와 기사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선사해줄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