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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큐레이터 '서쾌'를 아시나요?

정경윤 기자

입력 : 2015.12.04 07:39|수정 : 2015.12.04 07:39




“눈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모든 책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서 마치 군자와 같았다.” - 정약용 <여유당전서> 中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극찬한 남자가 있습니다.

“천하의 책이란 책은 모두 내 책이지요. 책을 아는 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게요.”

책만큼은 스스로 ‘조선 최고’라고 자부하는 패기 넘치는 남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생’. 당시 ‘서쾌’라 불리는 조선시대 서적 중매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서쾌는 책 한 종을 옆에 끼고 사대부 집을 두루 돌아다닌다." - 박제가 <북학의> 中

‘서적 중매상’, 말 그대로 양반가를 드나들며 책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선 후기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중매상이 아니었습니다. 서점이 많지 않던 조선시대, 책 거래는 대부분 서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서쾌들이 직접 구매 상담이나 추천도 했습니다. 서쾌들은 책에 관한 모든 내용을 기억해야 했고 주 고객층인 양반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교양도 갖춰야 했습니다. 서쾌들은 양반 뿐 아니라 마부나 여성 등 계층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북 큐레이터, 서점 MD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책을 중계하는 대가로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마냥 쉽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을 모두 불에 태우도록 하고, 만약 숨기는 자가 있으면 역적을 다스리는 형률로 엄중히 처벌해라.”- 영조실록 47년 5월 27일

전성기를 누리던 1771년, 조선의 왕을 모독하는 내용의 책 ‘명기집략’이 문제가 되자, 서쾌들은 그저 책을 유통했다는 이유로 죽거나 노예가 되어 유배를 당했습니다. 도성 안에서는 한동안 서쾌들의 왕래가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은 곧 재개됐습니다. 책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으로 필사하는 직업이 생겨났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도 많이 생겼습니다.

“책이 없어진다면 나도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것이요. 하늘이 내게 명해 천하의 책을 모두 알라고 한 것이지요.” - 조생

조선시대 문예 부흥기였던 18세기, 그 배경에는 계층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책을 널리 알렸던 서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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