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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파시스트"…딜레마에 빠진 미 공화당

입력 : 2015.11.27 05:38

'이대로 가면 필패' 위기의식…트럼프 대체할 '대안' 부재


'트럼프를 어찌할꼬'.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를 지켜보는 미국 공화당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히스패닉계에 이어 무슬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트럼프로는 내년 대선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꺾을 만큼의 지지율을 얻는 '플랜 B' 후보가 없다는 게 더욱 큰 딜레마다.

AFP통신은 26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공화당에 지속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이는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대권을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의 태도가 너무 호전적인 탓에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그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우려했다.

공화당의 속을 끓게 한 가장 큰 계기는 '무슬림 데이터베이스화' 발언이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을 골라내 '낙인'을 찍자는 발상은 일반 유권자들에게 용납되기 어려운데다가, 전체 무슬림 사회가 공화당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각 캠프를 떠나 같은 당원에게는 사용 자체가 금기시돼온 "파시스트"라는 용어까지 동원하며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후보의 외교정책을 자문하는 선거전략가인 맥스 부트는 AFP 통신에 "이런 용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트럼프는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젭 부시 후보의 국가안보 고문을 맡고 있는 선거전략가인 존 누넌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적 정체성에 따라 미국 시민들을 연방에 강제로 등록시키는 것은 파시즘"이라며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거짓말이 경선판을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외곽에서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유명 선거전략가인 리즈 마이어는 최근 '트럼프 카드 LLC'라는 반(反) 트럼프 운동조직을 만들었다.

'성장을 위한 클럽' 등 보수단체와 연계된 일부 수퍼팩(액수에 제한없이 합법적으로 선거자금을 기부할 수 있는 조직)들도 트럼프를 공격하는 광고를 준비 중이다.

경쟁후보들이 '벌떼'처럼 공격에 나선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오하이오 주지사인 존 케이식 후보는 최근 트럼프를 '나치'에 비유하는 1분짜리 광고를 내보내 주목을 받고 있다.

광고에는 베트남 전쟁포로 출신이자 예비역 공군 대령인 톰 모가 등장해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마틴 니묄러 목사의 발언에 빗대어 트럼프를 맹비난했다.

그는 "트럼프가 무슬림을 정부에 등록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당신은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침묵할지 모른다"며 "트럼프가 모든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체포해야 한다고 말할 때도 당신은 히스패닉이 아니어서 역시 침묵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생각해보라. 트럼프가 이대로 가서 대통령이 됐을 때에는 당신에게 다가설 것이다. 그때 가서 나서줄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 같은 반대 캠페인이 실제로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1천4명·11월16∼19일)에 따르면 트럼프는 32%를 얻어 22%에 그친 벤 카슨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와 환멸 속에서 트럼프를 응원하는 것이어서 어떤 메시지로도 이들의 태도를 바꿔놓을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치전문 컨설턴트인 프랭크 룬츠는 WP에 트럼프 지지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소개하면서 "정치적 이슈로는 트럼프를 떨어뜨릴 수 없다"며 "이들은 트럼프가 기성 정치인과 다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략가는 "어떤 메시지도 이들 지지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며 "트럼프가 예전에 오바마케어를 지지했고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에게 다정다감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이 같은 반대 캠페인은 트럼프의 반발을 야기해 경선판 자체를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3일 트위터에 "당이 나를 불공정하게 대우하려고 한다. 나를 반대하는데 거액을 지출하는 계획이 잡혀 있다"며 제3당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연출하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기현상 속에서 공화당의 '큰 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뒷전으로 물러나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

당내 주류후보들을 주로 지원해온 후원자들은 트럼프의 언행과 자질을 보면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트럼프를 꺾자고 뒷돈을 대는 것은 피하려는 분위기다.

공화당의 최대 후원자로 알려진 찰스·데이비드 코크 형제는 물론이고 공화당 전략가인 칼 로브가 만든 수퍼팩인 '아메리칸 크로스로즈', 부시 후보를 지지하는 수퍼팩인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 헤지펀드 매니저 폴 싱어, 억만장자인 리케츠 가족 모두 팔짱만 끼고 있다는 게 워싱턴포스트(WP)의 지적이다.

WP는 "5개월째 선두자리를 유지하는 트럼프를 낙마시키려는 움직임들은 '빈혈'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자금도 모이지 않고 초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후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데에는 트럼프의 인기가 내년 초에 가면 결국 사그라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과도 맞물려 있다.

루비오 후보를 후원하는 기업인인 프랭크 반더슬룻은 WP에 "당내 유권자들이 결국 그를 거부할 것이고 그는 '자폭'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화당으로서는 설령 내년 초에 가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선거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게 고민이다.

WP는 "공화당 후원자 대부분과 선거전략가들은 지금 주변부에 가만히 앉아있다"며 "공화당 후원자들의 '플랜 A'는 트럼프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만, 문제는 플랜 B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