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똑같아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지하철을 탔어요. 다들 그러시는 것처럼…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전쟁길… 야근에, 특근에, 가뜩이나 지쳐있는데… 빽빽하고 무미건조한 지하철은 피로를 몇 배는 더 키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남은 오후 시간도 힘내셔서 오늘 하루 마무리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 객실 스피커를 통해 사람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대체 누구일까요?
“쫙 한 번 기지개 크게 하시기 바랍니다.”
“식사하셨나요? 오늘은 추어탕이나 삼계탕은 어떠신지요?”
‘7호선 DJ’라 불리는 유진옥 기관사입니다. 그는 지하철을 운행하면서 환승역에 도착할 때마다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방송을 합니다.
“오늘과 내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우산 들고 타신 분 잊지 마시고 우산 잘 챙겨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방송 중-
방송은 주로 일기예보로 시작합니다. 첫 출발부터 종착역까지 오고 가는 승객들에 맞춰서 방송 내용도 ‘맞춤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2:1로 이겼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좋은 글귀는 물론, 때로는 스포츠 경기 결과도 알려 기쁨을 함께 합니다.
“쿠바와의 야구 경기가 있을 때 보라매역에 정차해 있었어요. 그때 마침 한국이 2:1로 이겼다고 아는 분께 문자가 왔어요. 그 문자를 받자마자 경기 결과를 방송하며 박수를 치자고 했죠. 그런데 뒤에서 박수 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거예요.”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그런데… 왜 이런 방송을 하는 걸까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했던 경험 때문이랍니다. 유진옥 씨는 처음부터 지하철 기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IT 회사를 다니던 건장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매출 부진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제 나이를 다들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결국 그는 힘들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다시 취업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매번 탈락하다가…합격해서 기관사가 됐죠!”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그러던 중, 그는 나이 제한 없이 기관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기관사가 된 겁니다.
“IT 회사를 다닐 당시, 2호선을 타고 출퇴근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밀고, 버티고… 힘들게 출퇴근하는 사람들 모두 다 힘내라고 누군가 한 마디 해주면 좋겠다.’”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기관사가 된 그는 지하철을 타고 풀 죽어 출퇴근하던 시절이 떠올라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지하철 방송을 시작했답니다. 그의 방송을 들은 승객들은 지치고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며 초콜릿과 쪽지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하철 승객들이 많이들 고마워하시는데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지하철을 운행하다 보면 무료해지기 쉬운데 무슨 방송을 할지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늘 반복되는 일상이 흐르는 지하공간.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덕분에 그 공간이 따뜻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11월 17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제가 7호선을 운행합니다!” -7호선 DJ 유진옥 기관사님-
지금 7호선에서는 어떤 방송을 하고 있을까요? 이어폰을 잠시 빼고 한 번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본 콘텐츠는 유진옥 기관사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