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생활·문화

"나라 잃은 비통함에"…한 가족 9명 의병투신 '일문9의사'

입력 : 2015.11.17 16:59


"나라 잃은 슬픔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내 나라를 되찾자." 항일의병 유중화는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제와 체결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1907년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고흥 유씨 집성촌에 일가족을 모았다.

아래 항렬인 태석, 영석, 명석, 준석, 현석, 연청, 연풍, 연봉 등 이른바 '일문9의사'가 한자리에 앉았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19세 현석까지 유중화 의사와 뜻을 같이해 모두 9명이 나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일제에 대항해 창검을 들기로 했다.

같은 문중인 유인석 조선의병대장의 뜻을 이어받아 비봉면 일대에서 의병대를 일으킨 이들은 주민 80여명과 함께 무기제작소를 지어 일제에 항거했다.

일문9의사 선양사업회 관계자는 "혈연관계에 있는 한 가문이 집단으로 의병활동에 나선 것은 우리나라 의병사에 전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의병활동에 나선 일문9의사는 4년여 동안 일본군과 5차례 전투를 치러 승전보를 울렸다.

1907년 2월 금마 산성에 매복한 이들은 금마 일본 헌병대를 급습해 15명을, 11월 고산군(현 완주군 화산면)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29명을 사살했다.

이듬해 4월과 9월, 10월에도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끝에 승기를 잡았다.

이들 9인은 진안, 금산, 여산, 익산 등지까지 세를 넓혀 의병대를 160명까지 늘리고 자체 군자금을 마련해 간도로 보내는 등 독립군 양성에도 힘을 보탰다.

또 일제에 부역한 일진회 간부를 척살하는가 하면 의병을 빙자해 재물을 빼앗거나 여자를 겁탈한 자들을 처형하는 '의인'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일문9의사 세력은 국권을 침탈당한 경술국치를 맞아 침몰했다.

강도 살인 혐의를 받은 유중화는 1910년 10월 임피(현 전북 군산시)에서 체포돼 총살당했다.

나머지 8의사는 같은 혐의로 10년에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옥중 순절하거나 출소 후 일제분제소에서 할복했다.

일제는 이들의 자손까지 학살하는 '절손'을 자행하며 가문에 핍박을 가했다.

일문9의사의 후손인 유희빈(69)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접한 선조의 이야기만 들으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이런 구국의 영웅들은 마땅히 칭송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문9의사 선양사업회는 1998년부터 17년 동안 '일문9의사 추모제'를 열어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업회는 이날 완주군 비봉면 장승공원에서 후손과 전주보훈지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일문9의사 추모제'를 지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