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7일 북아프리카 이민자가 몰려 사는 파리 교외 클리시-수-부아.
축구 경기 후 집으로 돌아오던 10대 소년 3명 옆으로 경찰차가 지나갔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경찰차를 보고는 무작정 도망치다가 변전소로 잘못 들어가 이 중 두 소년이 감전사로 사망했습니다.
이 죽음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인종차별과 만성적인 실업 등 이민사회의 사회적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두 달가량 지속한 소요 사태로 300여 채의 건물과 1만여 대의 차량이 불탔으며 미성년자를 포함해 3천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당시 TV로 세계에 중계된 소요 사태는 전쟁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민자 폭동 10주년 하루 전날인 26일 마뉘엘 발스 총리는 파리 교외인 레뮈로를 찾아서 "교외도 프랑스의 일부"라면서 이 지역 주민의 불만을 다독였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2005년 이후 10년 동안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파리, 마르세유 등 대도시 교외의 주택 재개발 등 교외 재정비 사업에 480억 유로(약 59조9천500억 원)를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자손의 생활은 당시와 비슷하거나 악화했지 개선됐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교외 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프랑스 청년 실업률의 배인 50%에 달하고 교외 평균 소득은 프랑스 평균 소득의 56%에 불과합니다.
이민자 후손들은 취업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면서 사회의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이민자와 그 자손의 프랑스 동화 실패가 이민자 폭동으로 표출됐다면 최근 들어서는 테러라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소외된 이민자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파리 연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이민자 자손인 쿠아치 형제와 아메디 쿨리발리가 공모해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과 파리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테러를 벌여 17명을 살해했습니다.
발스 총리는 파리 연쇄 테러 이후 신년 연설에서 "자생적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로 프랑스에 지리적·사회적·인종적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문제가 드러났다"면서 차별 해소에 앞장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2012년에는 알제리계 프랑스인 모하메드 메라가 툴루즈서 유대인 학교를 공격해 유대인 어린이와 교사를 포함해 7명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정보 당국은 주로 교외에서 살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 시리아, 이라크 등지의 지하드(이슬람 성전)에 참전한 프랑스인이 1천∼2천 명에 이르며 이 중 약 200명이 돌아온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사회당 소속의 말렉 부티 하원의원은 "우리 이웃에서 테러범들이 양산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면서 "10년 전에는 이들이 폭도였다면 현재는 테러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