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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천경자 차녀 "금관문화 훈장 고려 소식 들었다"

입력 : 2015.10.28 10:07|수정 : 2015.10.28 11:02

* 대담 : 故 천경자 화백 차녀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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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사회자: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시죠. 천경자 화백의 별세 소식이 두 달이나 지난 뒤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어제 천경자 화백의 장녀인 이혜선 씨를 제외한 유족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유족 대표로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따님이신데요.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김정희 교수님 직접 연결해서 말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희 교수님?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안녕하세요. 먼저 위로의 말씀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감사합니다. 관심 써 주시고 어머니한테 애정 베풀어 주셔서 많은 분들한테 감사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머님께서 또 그렇게 가셔서 많이 안타까우셨겠어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착잡하죠. 제가 평생을 어머님 일로 인해서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서게 될 줄은 상상을 못했어요. 항상 조용하게 사는 것이 어머니한테 누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사람인데 이번에는 사안이 저라도 나서서 해명을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수진/사회자: 

지금 2남 2녀를 천 화백께서 두셨고, 교수님께서는 둘째 따님이시라고요. 현재 미국에서 살고 계시고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미국에서 산 지 오래됐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제 기자회견 이야기도 좀 해보겠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다른 것보다도 어머님이 별세하시고 제가 제일 답답하게 생각한 것은 자식들의 불찰로 인해서 어머님 같이 정직하고 평생을 화업에 바쳐지고 국민들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으신 분인데 사회 공헌도 많이 하시고. 어떻게 제대로 어머님을 따뜻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 예의 장소가 없다고 할까요. 그것 때문에 제일 가슴이 아파서 뒤늦게나마 나서게 됐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따뜻하게 보내드리지 못했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렇죠. 좋아하시던 모든 분들이 어머님께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님이 다 만나보실 수 있게. 모든 국민들이 시민들이 가실 수 있는 장소가 있기를 바라고, 그걸 추진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추도식, 추모식이 될 수 있겠죠.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네. 그래서 이번 금요일(30일) 오전 10시에 다행히 서울시립미술관, 어머님 작품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아마 추모식을 모실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제일 바라고 싶은 것은 시민 여러분들이 주저 없이 찾아주셔서 어머님과 마음의 손길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이국땅에서 별세를 하셔서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어머님을 사랑했던 많은 분들과 이별할 수 있는 시간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추모식이 금요일에 열리게 되는 거고요. 어머님의 작품이 기증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가족들이 지금 그걸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시고요. 그리고 어제 또 기자회견에서 보면 정부가 어머님에 대해서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하지 않기로 한 데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셨던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지금 제가 알고 있기로는 다시 고려하고 계시는,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계신 것으로 보도를 들었는데요. 저희는 모든 어머님의 업적이나 생애로 봤을 때 아마 정당하고 타당한 예우를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여러 가지 불투명한 일 때문에 그런 점도 있다고 하셔서 제가 나서서 해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일단 정부에서는 다시 검토를 해보겠다?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 연락이 왔습니까?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보도를 통해서 봤어요.

▷ 한수진/사회자: 

직접적으로 유족에게 연락이 된 건 아니고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네. 왜냐하면 제가 화요일에 도착했거든요. 어제는 기자회견으로 바빴고, 그래서 정식으로 찾아뵙고 면담을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 한수진/사회자: 

예술가로서 합당한 예우를 해 달라 하는 게 가족의 마음이신 것 같아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네. 단 두 가지입니다. 추모식과.

▷ 한수진/사회자: 

그리고 또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어머님의 사망 소식을 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알았다고 하셨어요. 정말인가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사실입니다. 저희가 이런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 않아서 사실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러면 비화가 돼서 자식들 간에 분쟁이니 그런 이야기가 되는데 그건 전혀 아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역시 해명할 것은 해명해야 하고, 어머니를 위해서도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돼서 말씀 드렸는데 그런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큰 언니가 어머님을 모시고 있었던 거죠?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큰 언니에게 별세와 소식과 관련된 걸 전혀 못 받으셨다는 거예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렇게 됐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래요. 그렇군요. 어머님 유골이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도 모르신다는 거죠?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저를 비롯해서 특히 오빠가 그것을 애타게 알고 싶어 하고 있어요. 아마 조만간 가족이니까 우리가 다시 소통을 잘 하면서 함께 어머님께 인사갈 수 있는 길이 곧 열리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한수진/사회자: 

큰언니 이혜선씨가 일단 미국에서 어머니 유골을 품에 안고 한국에 왔었다 하는 보도는 있긴 있는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네, 8월 달에 오셨다 가셨다고 그러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그때가 이제 별세하신 직후였던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어디에 모셨는지는 지금 모르는 거고요. 다시 미국으로 모시고 간지 확실하지 않다 뭐 이런 말씀이시고요. 미술계에서는 이미 천경자 화백이 10여 년 전부터 돌아가신 게 아니냐, 하는 사망설이 나돌았다고 하더라고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랬다고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8월이 확실한 건가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럼요. 왜냐하면 제가 작년 겨울에 11월부터 어머님이 입원해 계셨기 때문에 저희 형제가 어머님 입원하신다거나 그런 큰일이 있으면 소통을 비교적 잘하는 편입니다. 언니가 연락을 해줘서 가서 어머님 간병도 해드렸고, 만남이 이어져서 마지막으로 뵌 것은 불행하게도 4월이었어요. 4월 5일에 제가 마지막으로 다녀왔고

▷ 한수진/사회자: 

그때는 말씀 좀 나누셨습니까?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때는 병세가 굉장히 깊으셨어요. 그래서 

▷ 한수진/사회자: 

말씀을 나누시기는 어려운 상태였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럼요. 힘든 상황이었죠. 손만 잡고

▷ 한수진/사회자: 

2003년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고 저희가 들었는데 그 이후에는 건강이 계속 좋지 않으셨던 거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렇죠. 그래서 언니가 예술원 측에서 계속 사진 같은 걸 보내달라고 했을 때 누워계신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싶은 자식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런 심정을 제가 다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번 처사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아서 그동안 가만히 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용기를 내서 어제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었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언니는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알겠습니다.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너무 사랑해서?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네. 언니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어머니를 모시는데 있어서 아주 헌신적으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수 년 간을 어머니를 위해서 살아왔어요. 그러니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치다 그렇게는 얘기하면 안 되니까 사랑이 깊어서 그러지 않나 생각됩니다. 

▷ 한수진/사회자: 

1991년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 불거지면서 절필 선언하신 뒤에 미국으로 건너 가셨는데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그때 굉장히 섭섭해 하셨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모국 땅을 밟으신 적이 없는 거죠?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아닙니다. 아닙니다. 거기에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91년에 가셨다가 절필 선언을 금방 번복하시고 왜냐하면 작가가 절필을 하고 어떻게 생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림도 계속 그리셨군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럼요. 그 이후도 제가 모시고 멕시코 여행도 갔고 가시면 스케치 많이 하시죠. 그 스케치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다 기증이 된 거고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렇죠. 펜실베니아 타운에서 그린 것도 거기에 기증돼 있고

▷ 한수진/사회자: 

어머님께서 고국을 많이 그리워 하셨겠어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그럼요. 많이 그리워 하셨죠. 미인도 사건 때문에 어머니가 상처를 물론 많이 받으셨지만 그것 때문에 미국에 체류했던 건 절대 아니고 그 이후에 1995년에 굉장히 큰 회고전이 있었죠. 

▷ 한수진/사회자: 

그래서 어떤 말씀 하셨는지 시간이 없어서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요? 한국에 대해서요?

▶ 김정희 교수/故 천경자 화백 차녀: 

항상 집에 가고 싶어 하시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하셨고. 그림이 어머니한테는 자식인데 그림이 있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셨죠. 

▷ 한수진/사회자: 

알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