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폴크스바겐 사태'로 독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기업 의존도가 특히 심한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 대표기업인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눈속임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독일 제품의 이미지 훼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위기가 나라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폴크스바겐 사태로 새삼 실감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소수 기업에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폴크스바겐 사태가 주는 교훈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이끄는 성장은 한계가 분명히 있는 만큼 혁신기업을 많이 만들어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노키아·폴크스바겐, 기업 위기가 국가 경제 흔들다 노키아는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노키아는 1998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판매량 1위에 오른 후 무려 14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전성기 때 노키아 상표는 북미, 유럽, 인도 등에서 휴대전화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노키아는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1998~2007년 핀란드의 성장에서 4분의 1을 노키아가 책임졌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2011년 노키아의 매출액은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기도 했다.
노키아가 흔들린 것은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경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결국 2013년 핵심인 모바일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국민기업 노키아가 흔들리면서 핀란드 경제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최근 독일도 대표기업의 위기가 국가 경제를 흔드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독일 대표하는 자동차업체인 폴크스바겐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폴크스바겐은 악몽같은 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량 리콜, 집단 소송, 형사처벌 가능성, 판매 위축, 브랜드 손상, 주가 폭락 등 수많은 악재가 한꺼번에 폴크스바겐을 덮쳤다.
폴크스바겐은 독일 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다.
CNN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독일 GDP의 2.7%를 책임진다.
'볼프스부르크(폴크스바겐 본사와 공장이 있는 곳)가 훌쩍거리면 온 나라가 병에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에서 폴크스바겐의 위상은 대단하다.
국가대표 기업이 흔들리자 독일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폴크스바겐의 속임수는 단순히 한 기업의 범죄를 넘어 독일 제품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로이터통신은 "폴크스바겐 사태가 '메이드 인 저머니(독일제)'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남겨 독일 경제의 가장 큰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ING의 카스텐 브르제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부채 위기와 중국 경기 둔화에도 나름대로 선방했던 독일 경제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굳건한 '삼성·현대차 공화국'…"대기업 견인 성장 한계 봉착" 독일의 대표기업이 폴스크바겐이라면 한국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1천959억2천만 달러(223조9천억원)로 한국의 명목 GDP(1조4천169억 달러·1천691조원)에 견주었을 때 13.83%에 달했다.
이는 GDP 1조 달러가 넘는 15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국가 내 부가가치의 합인 GDP와 기업의 총판매액을 뜻하는 매출액은 개념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한 국가의 경제가 특정 기업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독일 1위 기업인 폴크스바겐만 해도 GDP대비 매출액 비율이 6.97%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한국과 GDP 규모가 비슷한 호주, 스페인과 비교해도 국가대표 기업의 매출액 비율은 한국이 2∼3배가량 높았다.
삼성전자 매출액을 국내 2위 업체인 현대차(5.98%)와 합치면 GDP의 20%에 육박한다.
물론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매출이 국내보다 해외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GDP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두 기업의 매출액이 GDP의 20%에 달한다는 점은 경제 의존도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경제의 대기업 쏠림 현상을 걱정하는 얘기는 하루 이틀 나온 것이 아니지만 의존도가 점점 심해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30대 그룹의 매출집중도는 국내 총수요 기준으로 2003년 13.1%에서 2012년 24.5%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부통계상 국가자산총계 대비 자산집중도도 2001년 9.0%에서 2012년 15.4%로 높아졌다.
대기업 의존도가 크면 클수록 기업이 흔들릴 때 경제가 받는 충격도 더 커질 수 있다.
최근 '폴크스바겐 눈속임'에 독일 경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을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선진 경쟁업체와 중국 후발주자들의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는 점에서 위기론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의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우리 경제가 그만큼 취약한 구조를 가졌다는 증거"라며 "현재 두 기업 모두 후발 중국업체에 위협받는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흔들리면 두 기업에 공급하는 협력업체 실적이 덩달아 나빠진다는 점도 문제다.
지한파 미국 언론인으로 유명한 도널드 커크 기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를 통해 삼성그룹에 제품과 서비스를 납품하는 많은 기업을 고려하면 삼성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며 "재벌 기업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것은 위협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과거 성공 방정식이었던 대기업,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제조업의 경쟁력 창출 기회 및 상실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 관점의 전략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이 샌드위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혁신성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의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삼성전자는 애플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하며 샤오미와 경쟁하려면 원가 절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항구 연구위원도 "대기업 의존도 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폴크스바겐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비용 절감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