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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석 연휴 나들이, 여기 어떠신가요?

김영아 기자

입력 : 2015.09.25 14:35|수정 : 2015.09.25 15:30


그냥 딱 금요일마다 낮뉴스에 내는 전시 소개 기사에 넣으면 적합할 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명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긴 했지만, 신작도 아니고, 규모 있는 전시는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개막 날짜에 맞춰 공식 개막 행사 시간보다도 먼저 전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 없을 때 후다닥 작품 촬영 마친 뒤 개막식에 맞춰 작가들이 도착하면 인터뷰 하나씩 하고 바로 빠지자는 계산이었습니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열리고 있는 '구본창·이승희, 조선백자의 혼을 담다'展 얘기입니다.'최순우 옛집'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실수였다는 걸 바로 깨달았습니다. 작은 뜰을 빙 둘러싼 70년 넘은 고택의 정취가 저도 모르게 "아!" 탄성을 내게 했습니다. 그날따라 개성도 보이겠다 싶을 만큼 청명하고 하늘이 높은 날이었습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카메라기자가 촬영하는 동안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신선놀음도 이만한 신선놀음이 없었습니다. "매일 이런 일만 할 수 있으면 돈 내고 회사 다녀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최순우 옛집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명저로 잘 알려진 고 최순우 선생의 고택입니다. 선생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고택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인데 선생은 1976년부터 1984년 돌아가실 때까지 이 집에서 사셨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도 바로 이 집에서 탄생했습니다.

집 안엔 선생이 아끼시던 목가구와 도자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작은 뜰과 뒷마당엔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정취가 일품입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와 함께 가도 마치 다툰 사람들처럼 나란히 앉아서 한동안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자기 속에만 푹 빠져있게 될 법한 집입니다.선생이 돌아가신 뒤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들의 기금을 모아 집을 구입해 최순우 선생 기념관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국내 '시민문화유산 1호'입니다. 누구나 방문해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의 보물 같은 쉼터입니다. 그 옛집과 백자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향기는 이번 주에 볼만한 전시들 가운데 하나로 스치듯 소개하고 지나치긴 너무 아까웠습니다.결국 전시가 시작된 뒤 다시 최순우 옛집을 찾았습니다. 작품뿐 아니라 집도 좀 제대로 더 촬영하고, 보러 오신 분들 감상도 들었습니다. 메인뉴스 용으로 단독 기사를 따로 하나 쓰기 위해서입니다. 마침 단체 관람 오신 분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한참 물어봤는데 딱히 대단한 답변이 안 나옵니다. 그냥 다들 계속 "좋네요" "아.. 참 좋네요!" 감탄사만 냅니다. 마침 외국 관람객이 보이길래 물었더니 "이런 데서 살고 싶어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전시라는 게, 예술이라는 게, 보고 좋으면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사조니 양식이니 메시지니 많은 말들을 하지만, 감동이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말이죠. 그래서, 마침 추석 연휴도 앞두고 있으니 여건이 되는 분들은 나들이 겸 슬슬 한 번 들러보시면 어떨까 권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과 어우러진 백자의 아름다움이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트러스트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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