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된 서울 은평구 구파발검문소 총기사고 피의자 박 모(54) 경위를 검찰이 고민 끝에 살인 혐의로 기소하면서 박 경위의 운명은 법원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검찰은 박 경위가 자신의 행동으로 살인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고 보고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검찰이 외국 학설과 판례까지 참고했을 만큼 살인죄의 법리적 해석 문제가 중요한 사안이어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검찰이 박 경위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권총을 가슴에 겨눈 상태에서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방아쇠를 당겼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사망할 위험을 충분히 예견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검찰은 박 경위가 그런 위험을 막을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경위는 당일 총기를 다른 근무자로부터 인계받으면서 실탄이 발사 위치에 있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숨진 박 모(21) 수경(당시 상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도 실탄이 발사될 가능성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진행한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박 경위는 '총기를 인계받았을 때와 그 이후 총을 쏘기 전 공포탄 위치를 확인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탐지기 반응은 '거짓'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경위가 평소 불안증 치료제를 복용한다는 점, 사건 당시 의경들에게 욕설하는 등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는 박 경위 본인 진술, '무시당했을 때 분노를 느낀다'는 심리분석 결과 등도 검찰이 살인 혐의를 적용하는 데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공포탄 1발 외에 모두 실탄이 장전된 총을 70㎝ 앞에서 심장을 향해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총탄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살인의 고의가 약하다고 해도 이런 위험을 무모하게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하면서 독일과 미국의 학설과 판례를 검토하고 국내 법학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검찰시민위원회까지 열어 사건을 설명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위원 8명 중 6명이 혐의 적용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다만 검찰은 박 경위와 박 수경이 평소 친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계획적 살인으로 보기 어렵고, 총탄이 발사된 후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을 과실로 볼 소지도 있다고 보고 중과실치사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습니다.
경찰 역시 수사 과정에서 박 경위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가려보고자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두 사람과 함께 근무한 다른 의경 등 여러 참고인으로부터 평소 박 경위의 행동, 박 경위와 박 수경의 관계, 사건 전후 상황 등을 들으면서 박 경위에 대한 살인 혐의 적용 여부를 신중히 검토했습니다.
법조인들로부터 조언도 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파악한 당시 상황의 맥락은 검찰이 본 것과 달랐습니다.
박 수경의 휴대전화 배경에 박 경위 사진이 있을 정도로 둘이 가까운 사이였던 점,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의경들의 증언, 사고 직후 박 경위가 박 수경을 안고 울부짖은 점 등을 보면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경찰은 봤습니다.
사건 발생 직전 박 경위가 의경들에게 했다는 욕설도 평소 의경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상적으로 쓰던 말에 불과해 그가 '따돌림당한 뒤 격분'했다고 볼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습니다.
총기를 다루는 자신의 능력에 상당한 확신이 있었고, 실탄이 절대 발사되지 않으리라 믿었다는 박 경위의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경찰의 결론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박 경위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 "경찰로서는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내놓았고 살인 혐의 적용 여부는 경찰과 검찰 간 견해 차이일 뿐"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재판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