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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보급 이충무공 유물을 둘러싼 진실 공방…누구 품으로?

송성준 기자

입력 : 2015.09.22 14:21|수정 : 2015.09.22 14:22


▲ 국립해양박물관
▲ 충민공계초 표지
 
국립해양박물관이 지난해 4월 천안에 있는 한 민속관으로부터 3천2백여만 원을 주고 구입한 ‘충민공계초’라는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왕실에 올린 보고서를 원본 그대로 필사해 엮은 고서입니다.

박물관 측은 해양박물관의 특성을 살려 이순신장군의 유품을 모은 특별전시관에 이 고서적을 전시해 놓기 위해 구입했습니다. 구입 당시 책 보관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1년간에 걸친 복원작업을 거쳐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습니다.
▲ 대전지방경찰청
▲ 현충사
 
그런데 대박! 그냥 귀중한 유물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 책이 ‘국보급’이란 평가가 나오면서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유물을 전시 보관 관리해 오고 있는 현충사가 “이 책이 분실된 것”이라며 ‘장물’이라고 반환을 요청해 왔고 급기야 대전지방경찰청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매입한 박물관 학예사 한 명을 포함해 매도한 문화재 거래업자 등 모두 5명을 불구속 기소키로 한 겁니다. 나아가 경찰은 같은 국립기관을 상대로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충민공계초’를 압수해 문화재청에 위탁 보관토록 했습니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던 해양박물관은 “경찰의 수사가 특정 의도를 가진 기획성 수사”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아울러 이 책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 충민공계초의 가치는? "국보급 유물 가능성 커"
▲ 충민공계초 내용
▲ 임진장초 표지 판
 
‘충민공계초’는 임란 당시 상황보고서인 장계 68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또 백사 이항복의 ‘이통제사비명’과 ‘고통제사이공유사’, 박승종의 ‘충만 사기’가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모아 놓은 ‘임진장초’라는 고서가 있는데 국보 제 76호입니다. 이 책에는 장계 61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충민공계초’는 국보급 ‘임진장초’보다 수록 편 수도 더 많을 뿐만 아니라 ‘임진장초’에 없는 장계가 12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학술적 가치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모은 책 가운데 이 책에는 유일하게 연도가 표시돼 있습니다. ‘강희 원년 3월 필사를 마친다’는 글이 이 책 마지막에 표시돼 있습니다. 강희 원년은 1662년입니다. 따라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인 셈입니다.
▲책 마지막 연도 표시

또 이순신장군의 시호는 원래 ‘충무공’인데 사후 ‘충민공’이란 시호로 사용된 하나 밖에 없는 자료라고 합니다. 또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임진왜란 2백년 뒤에 만들어진 자료인데 당시에는 이두에서 중국식 표기법으로 바꿔 사용해 왔는데 이 책은 임란 당시 사용해 온 이두표기가 그대로 들어가 있어 원본과 가장 가까운 자료라는 평갑니다.

문화재청 정제규 전문위원은 ‘임진장초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61편에 불과한데 나머지 계본이 확인되지 않고 있었으나 그 원본을 이번에 회수한 충민공계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데 1차적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충민공계초 구입…"적법한 절차" vs "미필적 고의"
▲ 매매계약서
▲ 박물관 홈페이지 총민공계초 공고내용
 
박물관은 이 고서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은 공식 문화재매매업자로부터 구입했습니다. 유물매매계약서까지 작성했고요. 그 뒤 4단계에 걸쳐 장물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첫 번째로 매도자로부터 장물일 경우 어떤 처벌도 감수한다는 서약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자체 내부 심의와 함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유물수집심의위원회’와 ‘유물감정평가위원회’ 2회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심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 번째로 문화재법에 따라 모든 도난 문화재는 문화재청의 도난 목록에 기록돼 있어야 하는데 도난 목록에 문제의 ‘충민공계초’는 리스트에 없었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 구입 당시 11일간 인터넷에 화상공개를 하고 이의 신청을 받았으나 아무런 이의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구입한 뒤에는 박물관 홈페이지에 지금까지 이 고서를 올려 놓고 이순신장군을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나 민속전문가에게 공개를 해 왔다는 겁니다.

해양박물관 김주식 운영본부장은 “이러한 4단계의 도난 유물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을 뿐만 아니라 구입하고 나서도 이 자료를 공개해 왔다”며 “장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이 자료를 공개해 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대전경찰청 수사 자료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해 온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입장은 다릅니다. 경찰은 박물관측이 이충무공 전시관을 만들기 위해 이충무공 종가와 현충사를 방문해 유물 사본을 복제해 갔고 이충무공 관련 서적을 구입할 당시 실질적으로 현충사나 종가에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합니다.

즉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실질적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전경찰청 김연수 광역수사대장은 “현충사와 관련된 유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판단이 되고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실제로 확인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업무상 과실장물취득죄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충민공계초' 유출 경위는?
▲ 대전경찰청 수사 자료

경찰이 밝힌 ‘충민공계초’ 유출경위는 지난 2007년 종갓집 보수공사를 할 때 종부가 평소 교인관계로 잘 알고 있던 김 모 씨에게 필요 없는 책을 쓰레기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하자 김씨가 충민공계초와 함께 다른 고서적 112권을 갔고 나와 보관하고 있다가 지난 2011년 7월 경 조 모 씨에게 5백만 원에 팔았고 조씨는 2011년 11월 문화재 매매업자인 정 모씨에게 570만 원에 다시 팔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뒤 다시 문화재 매매업지인 김 모 씨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간 뒤 김 씨가 해양 박물관에 팔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충민공계초’는 장물이 분명하다는 입장입니다.
 
● 장물인가, 관리 소홀인가? 경찰 수사의 과잉 수사 비판 직면

 
하지만 한국사 중앙연구소 안 승준 박사는 경찰의 수사에 대해 과잉 수사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안 박사는 기본적으로 충민공계초를 포함한 고서적은 장부의 동의하에 김 씨가 가져 나와 장물 이라기보다는 종부의 관리 소홀이 더 큰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불구속 입건된 박물관 학예사의 경우 자칫 영원히 쓰레기로 사장될 뻔 이 충무공의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발견해 오히려 복원 과정을 거쳐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죄를 물을게 아니라 오히려 상을 줘야 마땅하다며 경찰의 유물 수사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충사측도 해양박물관측의 과실이 없는 선의의 취득이라는 입장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심의를 했던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도 “충민공계초는 아직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로 전문가 조차 그 가치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하물며 박물관측 학예사는 충민공계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인데도 마치 의도성을 가지고 장물을 습득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수사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문화재청과 현충사의 유물 관리 허점 투성이…근본적 유물관리 시스템 개선 필요
▲ 충민공계초 소장자 확인 과정 자료
 
사실 이번 충민공계초의 장물 논란은 모 문화재연구소 노 모 소장이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시작됐습니다. 이순신 관련 분실 유물 ‘장계별책’이 박물관에 있는 ‘충민공계초’라며 논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논란 과정에서 과연 이 책이 언제 분실 됐는지 분실 시기와 또 충민공 계초와 장계별책이 같은 책인지 여부도 아직은 연구를 해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재청의 도난 문화재 목록에 충민공계초는 없습니다. 현충사관리소는 “망실 훼손을 우려해 그 동안 도난 또는 분실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합니다.

또 이러한 귀중한 자료가 왜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고 종갓집에서 방치되고 있었는 지에 대해서도 문화재청과 현충사의 책임이 큽니다.
조만간 경찰은 이 사건을 검찰로 넘겨 수사 지휘를 받아 불구속 기소할 계획입니다.

장물로 인정될 경우 ‘충민공계초’는 소유권이 해양박물관에서 현충사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장물이 아닌 정상적 절차에 따라 매매가 됐다고 인정될 경우 박물관 소유권이 인정돼 충무공 이순신 전시실에 전시되게 됩니다. 이와 별개로 박물관 학에사에 대한 불구속 기소의 타당성 여부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경찰의 수사에 대해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입니다. 자칫 영원히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 국보급 ‘충민공계초‘의 행방이 어디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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