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1인당 국민 소득이 제일 높은 국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서 4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국가.
이는 전형적인 자본주의를 추구해 경제 성장과 선진화에 성공한 싱가포르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철저한 성과주의와 최소한의 복지 혜택으로 대표적 자본주의 국가로 통하는 싱가포르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좌파적 색채의 정책을 도입해 복지 혜택을 강화할지 주목된다.
이번 선거에서 주택 가격 등 물가 상승, 저소득층과 노년층 지원 확대, 빈부격차 완화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영국 식민지 치하 자치정부 시절인 1959년 총리로 취임해 1990년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직에서 퇴임할 때까지 30년 이상 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싱가포르를 철저한 성과주의 사회로 만들었다.
나라가 작고, 자연자원이 없는 싱가포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국민이 실적에 따라 보상받게 하고, 가혹한 경쟁을 도입했다.
반면 일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복지는 없다며, 서구식 복지제도 도입은 꺼렸다.
이 같은 성과주의와, 치열한 경쟁, 끊임없는 혁신 등은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공과 번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빈부격차 심화로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물가, 성장 위주 정책에서 초래된 과다한 외국인 노동자 도입으로 인한 구직·교육·의료·주택 환경 악화, 임금 하향 압박 등은 성장 둔화와 저소득·노년층의 고충으로 이어졌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4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0부터 1 사이 값으로 표시되는 지니계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함을 뜻하며 0.4를 넘으면 빈부 격차가 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한 국민 불만은 지난 2011년 총선에서 확연히 드러나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은 뼈아픈 패배를 맞봐야 했다.
독립 이래 한 번도 정권을 놓친 적이 없고, 1968년부터 1981년까지 총선에서 야당에 한 석도 허용한 적이 없으며, 이후에도 야당에 최대 4석밖에 내주지 않았던 PAP는 2011년 선거에서 야당에 6석을 빼앗겼다.
국민은 고물가, 외국인 증가 및 이로 인한 지하철 등 교통수단 혼잡과 생활환경 악화를 가장 큰 불만 사항으로 꼽았다.
이 선거 후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와 PAP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대폭 제한하고, 서민층과 노년층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 이들이 양질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했다.
또 주택 가격 안정 정책을 펴고,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저소득층 복지에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흑자재정을 고수했던 정부는 저소득 가정과 노령 계층에 대한 정부 지출을 늘렸다.
리 총리는 2011년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 조기 총선을 결정하기 직전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보조금 증액, 출산 장려금 지급 대상 확대 등 이른바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적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독립 후 국가건설에 기여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소득 노년층에는 '개척세대패키지'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재무부 장관 겸 부총리는 과거 정부와 PAP가 '상의하달'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강권적 통치를 한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하는 한편 "이제는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과 함께 움직인다. 공정하고 모든 계층을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 사회 정책을 조정 중이다"며 저소득 계층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 운동 기간에 제1야당인 노동당 등 야권은 고용, 의료, 주택 등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고충에 선거 전략을 집중했다.
노동당의 지난주 말 유세에는 3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하고, 지난 7일 다른 야당인 싱가포르민주당의 유세에도 5천여 명이 참여해 야당 지지세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
이 같은 야당 지지세는 정부가 국민 불만 해소 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끝나더라도 정부, 여당의 거시적 경제제도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나 사회안전망 확충 등 저소득 복지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