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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를 땔감으로 휴지로…신흥국에 초인플레 일어나나

입력 : 2015.09.02 13:13


최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를 중심으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은 주로 정부가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서 생깁니다.

화폐남발에 따른 부작용은 국민들 전체에 광범위하게 파급됩니다.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물가가 연간 600∼800%씩 폭등하면서 화폐가 말 그대로 휴짓조각으로 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미의 모습은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초인플레이션을 연상시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86세 할머니 마리아 아기레 씨는 지난 28일 국영 마트에 갔다가 문을 열자마자 수천 명이 몰려드는 데 밀려서 압사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물자 부족 사태가 극심해져서 상점 전체 진열대가 텅텅 비거나 마트에서 몇시간을 기다리고도 허탕을 치는 일이 일상이 됐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물가 상승률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작년 12월 연간으로 68%를 찍은 것이 마지막 공식 수치입니다.

남미 언론 엘 나시오날이 지난달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7월까지 물가 상승률은 89.6%입니다.

미국 좁스 홉킨스대 산하 정책연구기관 케이토 인스티튜트에서는 지난달 28일 베네수엘라의 올해 인플레율이 808%에 이르고 생활비 상승률은 연 722%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을 내놨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0%대로 지금에 비하면 훨씬 양호했지만 2013년 38%를 기록하며 급격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도 경제 파탄에 이은 물가 급등으로 일반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7.8%였지만 서방 제재와 유가 하락이 겹치면서 경제가 급속히 악화돼 올해 들어 1분기 16.2%, 2분기 15.8%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메밀과 같은 일부 물자는 아예 종적을 감췄고 터키나 남미에서 수입하는 과일이나 채소 등 수입 식품 가격이 심각하게 뛰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이미 식료품을 사는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모스크바 공무원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지난 여름에 다름 사람들처럼 정원에서 기른 채소를 먹으며 지냈다고 밝혔습니다.

2분기 물가 상승률이 58.9%에 달한 우크라이나의 사정은 러시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지난 2분기 각각 8.5%와 15.4%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입은 인도네시아가 7%로 비교적 높은 인플레를 기록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초인플레이션은 1919년 독일에서 일어났습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1천320억 마르크에 달하는 막대한 전후 배상금을 물게됩니다.

이는 당시 독일 국민소득의 10%에 이르는 돈으로 사실상 전쟁 직후의 독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중앙은행에서 마르크화를 찍어내는 식으로 배상금을 마련했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와 환율이 폭등했습니다.

독일 일간 슈피겔에 따르면 1914년 달러당 4.2 마르크였던 환율은 1923년 11월 달러 당 4조2천억 마르크로 치솟았습니다.

불과 사나흘이면 물가가 2배로 뛰었고 월간 인플레이션율이 2만9천500%에 달했습니다.

돈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사람들이 일당을 받거나 물건을 사러갈 때 돈다발을 담을 수레를 끌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은 마르크화 뭉치를 블록처럼 쌓으면 놀았고 땔감 대신 마르크화를 태워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헝가리와 짐바브웨 역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의 격전지였던 헝가리는 전후 재건을 위해 펭고화를 마구 찍어낸 결과, 독일보다 심각한 화폐 가치 하락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1945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유통통화는 250억 펭고였지만 1년 뒤에는 47자(10의 24승) 펭고까지 급격히 늘었습니다.

통화정책에서 완전히 실패한 헝가리 정부가 새로운 화폐인 포린트화를 발행했고 사람들은 길거리에 이미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펭고화를 버렸습니다.

가장 최근에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국가는 짐바브웨입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실정과 토지개혁 실패로 농산물 등 물가는 치솟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2008년에는 월간 인플레이션율이 2억3천100만%에 달했고 빵 하나 가격이 7억 짐바브웨 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급기야는 액면가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현재 경제 안정화를 이유로 올해 6월15일~9월30일을 짐바브웨달러(Z$) 통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한번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가 경제는 빠져나오기 힘든 침체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 경제의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디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중심으로 경제 거품이 꺼지고 국민은 부채 부담에 시달리면서 디플레이션이 시작됐습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인 '규동'(소고기덮밥) 가격은 한 그릇에 200엔(약 2천 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디플레이션 여파로 내수가 가라앉고 기업 매출이 줄자 정규직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대부분의 일본 젊은이들은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의 길을 택했습니다.

한 일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도시에서 2시간 거리인 잉크 프린터 공장에서 카트리지 뚜껑을 덮는 일을 한다고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이 전했습니다.

하루에 9시간씩 근무를 하지만 비정규직에다가 임금이 워낙 낮아 주말이면 막노동 일거리를 찾습니다.

당구대 크기와 엇비슷한 아파트에서 라면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청년은 자신의 삶을 '프리터의 고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홍콩에도 약 8년에 걸쳐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환율 약세를 이어갔지만 홍콩은 환율을 미국 달러화에 고정한 페그제를 운용하면서 경기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여기에 홍콩과 중국이 경제일원화를 하면서 값싼 제품과 노동력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웠다고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설명했습니다.

2003년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까지 유행해 단 넉달 사이에 3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홍콩의 소비는 사실상 얼어붙었습니다.

당시 대형 쇼핑몰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홍콩을 여행자제권고 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여행객도 급감했습니다.

관광업이 침체하자 급기야는 홍콩의 한 항공사가 단돈 999 홍콩달러(약 15만 원)에 중국 3박4일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디플레이션 기간에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습니다.

1980년 1분기 부동산 가격을 100으로 가정해 분기별 홍콩부동산가격지수를 분석한 결과 1997년 3분기 197.8을 기록했던 부동산 가격은 2003년 3분기 69.2로 6년만에 65% 감소했습니다.

홍콩 시민들에게 디플레이션의 기억은 뼈아프게 남아있습니다.

중국 경기가 불안해지고 지난해 소매 판매액이 전년보다 0.3% 줄어든 4천933억 홍콩달러(약 70조 원)로 나타나자 홍콩 시민들은 디플레이션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홍콩 소매판매가 감소한 것은 디플레이션이 심화했던 2003년 이래 1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막 수이킹 홍콩소매협회장은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소비 판매 감소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두고 '악몽'이라고 표현하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