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층 취재를 하다가 반 지하 집에 살고 있는 강청조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핏기 없이 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가 인상적인 29살의 앳된 여성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는 자신이 ‘희소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병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 대신 펜으로 ‘Von Hippel-Lindau syndrome(폰 히펠-린다우 증후군)’이라고 종이에 써 줬습니다.
염색체 이상으로 중추신경계와 신장을 비롯해 온 몸에 끊임없이 종양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국내에 7백여 명이 이 병을 앓고 있습니다. 청조 씨처럼 젊고 예쁜 친구가 그런 생소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희소병 환자’ 이미지가 아니었기에, 질문을 하면서도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평소보다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두 시간 뒤 그녀의 집을 나서면서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습니다. 주거빈곤층 기사에 그녀의 사례를 차마 넣을 수 없었습니다. 청조 씨는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이 ‘천국 같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강청조 씨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몇 달 전 LH공사에서 전세금을 지원받아 마련한 집입니다. 매달 10만 원이 조금 넘는 대출 이자만 LH 측에 내면 됩니다. 비록 반 지하 집이지만 작은 거실도 있고, 잠을 따로 잘 수 있는 방도 있고, 부엌도 있습니다.

청조 씨가 스무 살 때부터 이제까지 살던 다른 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공간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 곰팡이가 가득했던 반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도 한 달에 30만 원씩 월세로 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받는 40만 원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공과금을 내고 끼니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청조 씨는 그때부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날씬해지려고 관리한 몸매가 아니라, 먹지 못해 깡마른 몸매가 된 겁니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 살고 있는 청조 씨의 집은 그녀 말대로 ‘천국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터뷰 내내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주거 문제보다 청조 씨를 짓누르는 건 이름도 생소한 그녀의 병입니다. 17살 때 뇌와 척수에 종양이 생겨 처음 수술을 하게 됐고, 오른쪽 몸의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제대로 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간 학교에서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쟤 팔에 감각도 없대.” “난로에 손 올려봐.” 17살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습니다. 수술 전까지는 밝고 활달해서 친구도 많았고, 재주가 많아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했던 꿈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희소병은 많은 걸 내려놓게 만들었습니다.
아픈 몸으로 어렵게 학교를 졸업한 뒤 작은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어떤 날은 회사에 기어서 갈 정도로 몸이 아팠지만 엄청난 검사비와 치료비, 수술비가 두려워 병원 가는 걸 주저했습니다. ‘죽을 만큼’ 아플 때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봤습니다. 당시 병원에서도 병명을 몰랐기 때문에 희소병으로 등록되지 않아, 병원비도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두 차례 수술대에 더 오르면서, 불어난 병원비 때문에 카드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수술을 한 번 하면 일을 쉬어야 되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없었고, 수술을 마친 뒤에는 몸이 더 쇠약해져 사회생활도 힘들어졌습니다. 지난 2010년 그녀의 병은 드디어 정부의 의료비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 매달 지원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몸 상태와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남들한테 계속해서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여전히 의료비 지원 대상이 아닌 검사 항목도 많습니다. 그녀가 여전히 끼니를 줄이는 대신,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으는 이유입니다. 언제 어디에 또 종양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병원비를 저축해두는 겁니다. 청조 씨는 현재 가슴에 생긴 종양 때문에 4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하지만 청조 씨는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합니다. 정부의 의료비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한 희소병 환자도 많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희소병은 7천 여 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 등록된 질환은 현재 1천여 개에 불과합니다.
국내 희소병 환자는 5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정부에 등록되지 못한 희소병 환자까지 합치면 모두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 의료비 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보건복지부의 고시에 의해 지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지원 대책이 없는 실정입니다.
예산도 해마다 줄고 있는데,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예산 확보 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지원이 중단돼도, 문제될 게 없단 뜻입니다. 국회에는 현재 희소병 관련 법안이 5개나 계류돼 있지만 언제 처리될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청조 씨를 비롯한 희소병 환자들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삶이 불안하지 않느냐고. 실제로 청조 씨가 현재 지원받고 있는 LH 공사의 전세금 대출은 최대 9년까지만 연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9년 뒤에는 전세금을 다시 LH에 돌려줘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월 수급비 40만 원 가운데 30만 원을 월세로 냈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신이 9년 뒤까지 살아 있겠냐고,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글로서 10년 넘게 제 자리 걸음인 이 막막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알려, 희소병 환자들의 위태로운 삶을 바꿀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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