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최진행 선수가 금지 약물인 ‘스타노졸롤(stanozolol)’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최 선수는 ‘30경기 출전 금지’ 징계가 끝나 복귀했지만, 최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습니다. 프로야구에서 약물 복용이 적발된 사례는 지난 2002년 삼성 라이온즈 진갑용 선수를 시작으로 이번이 6번째입니다.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금지 약물 파동, 왜 야구선수들은 약물 유혹에 무너지는 것일까요?
● 폭발적인 힘을 내게 도와주는 ‘스테로이드’
사실, 약물 복용은 야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육상이나 수영 같은 종목에서 더 자주 발생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물은 ‘아나볼릭(Anabolic) 스테로이드’인데, 이 스테로이드는 체내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해 단기간에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 적혈구 수도 증가시켜 체내 산소 공급도 수월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국제육상연맹 도핑 테스트에서 2005·2007 세계육상 참가자 28명이 금지약물 복용 양성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짧은 순간 많은 힘을 내야 하는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는 참기 어려운 유혹일 수밖에 없습니다.
● 투수, 피로 회복 목적으로도 스테로이드 사용
하지만, 스테로이드의 효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스테로이드는 의학적으로 염증을 가라앉히고, 조직이 부어 기능장애가 오는 걸 막아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는 관절염 같은 염증성 질병 치료에도 널리 이용됩니다. 또, 알레르기 같은 '과잉면역 반응'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야구선수들이 약물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육상, 수영선수처럼 근육을 단련해 힘을 높이는 건 물론 부상이나 피로에서 빨리 회복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찾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선발 투수들은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책임지며 100개 가량의 많은 공을 던집니다. 그렇게 많은 공을 던지게 되면, 어깨 근육에 피로물질인 젖산이 많이 쌓이고 심하면 실핏줄이 터지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다음 선발 등판까지 손상된 근육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매일 불펜에서 몸을 풀며 대기하는 구원투수에게 회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런 투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스테로이드가 가진 ‘염증 억제 효과’로 어깨나 팔꿈치 등에 발생할 수 있는 근육 파손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뉴욕 양키즈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 LA 다저스 에릭 가니에,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리오스 등 당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들도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약물을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타자들은 근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용

스테로이드는 타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스테로이드로 염증반응을 억제하면 피로가 빨리 회복되고, 근육의 피로도가 덜 쌓이면 더 많은 근력 강화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짧은 시간에 근육을 늘려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를 일주일에 한 번씩 5주 동안 복용하면, 1년 동안 근력 강화운동한 것과 비슷한 체력훈련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는 금지 약물을 주기적으로 복용할 경우, 1시즌을 기준으로 볼 때 타자의 평균 타율은 1푼 정도 높아지고 장타율도 크게 높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처럼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매우 즉각적이고 또 매우 강력합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한 스포츠잡지가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이 약물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지만, 대신 부작용으로 7년 후 사망한다. 당신은 약물을 복용할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응답자의 80%가 약물을 복용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약물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달콤한 유혹,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스포츠맨 정신을 어긴다는 근원적인 비판을 제외하고도, 선수 개인이 감수해야 할 신체적 부작용도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스테로이드를 장시간 복용하면 간과 신장이 파괴되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져 심근경색과 같은 순환기질환으로 숨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티브 베클러도 에페드린을 과다 복용해 훈련 중 급사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스테로이드를 과다 복용하면 체내 성호르몬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중단돼 고환 크기가 작아지고, 젖가슴이 나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성은 반대로 가슴이 작아지고, 월경 없어지며, 심하면 불임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 팬들이 원하는 건 ‘약물’이 아닌 ‘땀방울’
야구선수들이 강한 체력과 집중력으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홈런, 안타, 출전 경기 수 등에 따라 인기와 연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해 하는 선수들에게 약물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팬들이 그들에게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는 건 그들이 만든 ‘숫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숫자 뒤에 가려진 ‘땀방울’을 팬들은 응원하기 때문입니다. 팬들은 원하는 건 ‘약물’로 만들어낸 숫자가 아닌 ‘땀방울’이 빚어낸 기록일 것입니다. 모든 선수가 약물의 유혹을 떨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해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주길 바랍니다.